전국적으로 진행중인 대형사업의 57%가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을 지키지 않고 있으며 특히 공공사업의 경우 61%가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환경부의 발표다. 언뜻 들으면 깜짝 놀랄 일같지만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다. 환경오염과 파괴를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이처럼 유린당해도 확실한 제재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환경영향평가가 안지켜도 그만인 허울뿐인 제도로 전락한 것은 환경당국이 대규모 개발사업의 인허가 과정과 사후관리에 효율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시행자와 환경평가 작성자가 동일인이거나 사업자가 평가자를 선정하도록 하는 제도 아래서 공정한 환경평가를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다. 평가서가 부실하게 작성돼도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 더구나 무시해도 그만인 협의사항을 누가 애써 지키려 하겠는가. 정부는 작년에도 유명무실한 환경영향평가제도의 개선을 추진한 적이 있다. 허술한 사후관리체계를 대폭 강화하고 평가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독립 기구로 환경영향평가원을 설립한다는 내용 등이었다. 그러나 후문(後聞)이 없다. 신한국당도 평가서작성자 실명제와 평가관련 법체계의 정비를 추진한다고 했으나 역시 그것으로 끝이었다. 환경영향평가가 시작된지 올해로 15년이 된다. 93년부터는 환경영향평가법이 단일법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도 개발에 환경적 배려를 의무화함으로써 「개발과 보전의 조화」를 실현한다는 좋은 뜻에서 출발한 평가제도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제도를 대폭 손질해서 환경당국에 실효적인 힘을 실어줘야 한다. 더 망설이면 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