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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학준/황장엽씨 회견을 보고

입력 | 1997-07-10 20:24:00


주체 사상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북한 노동당 사상 담당 비서 출신 黃長燁(황장엽)씨의 10일 기자회견 내용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은 역시 북한의 전쟁준비계획이라고 하겠다. 한반도를 둘러싼 내외정세를 종합해 본다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개연성은 매우 낮다고 결론내리는 것이 상식이지만, 북한의 통치집단은 문명시대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는 「예외적 특수 성격」을 지녔기에 북한 권력구조의 중심부에 속했던 그의 증언은 소중하다. 황씨에 따르면 오늘날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金正日(김정일)은 「제2의 한국전쟁」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김정일은 승전을 100% 확신하고 있다. ▼ 더 무모해진 북한 ▼ 그뿐만이 아니다. 황씨에 따르면 북한의 군사 지휘부 역시 그렇게 믿고 있다. 경제력은 남한이 월등히 앞서 있으나 군사력은 북한이 우세해서 미국만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완전히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황씨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도 대체로 전쟁을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있다. 식량 위기로 압축된 경제적 파탄에 시달려 이렇게 비참하게 살 바에야 차라리 사생결단을 내보자는 심리에 싸여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황씨가 보기에 김정일은 마침내 핵무기를 손에 넣은 것 같다. 화학무기는 이미 완비했다. 따라서 김정일은 속전속결로 서울을 점령하고 수도권의 2천만명에 가까운 인구를 인질로 삼아 미국과 일본마저 위협하면 미국이 군사적 개입보다 오히려 협상의 길을 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황씨의 증언이 황씨의 진심에서 나온 것으로 믿고 싶다. 우리와는 사상과 노선을 달리한 공산주의자였음에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에게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풍모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씨의 증언 내용이 진실된 것이라고 해도 북한이, 또는 김정일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 필자는 계속 묻고자 한다. 김일성이 죽은 뒤 3년 동안 김정일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그는 협박을 외교와 협상의 주요한 무기로 활용하면서도 사안(事案)을 실리적으로 매듭짓는 경향을 더 많이 보여 왔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또 북한은 아직 핵무기를 손에 넣지 못했다는 것이 필자의 분석이다. ▼ 위축되지말고 자신감을 ▼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 대해 안이하게 대처하자는 뜻은 아니다. 안보태세에 소루(疏漏)함이 없도록 언제나 만전을 기해야 하며, 그러한 맥락에서 황씨의 증언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황씨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전쟁 예방에 모든 힘을 쏟아야겠다고 결심할 만큼 북한의 전쟁도발 의지는 강하다고 할 때, 우리로서는 더욱 북한이 무모한 불장난을 하지 못하도록 군사적 및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 한반도의 장래, 대한민국의 장래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국민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활력 있게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꼭 덧붙여 토론하고 싶은 것은 주체사상에 관한 황씨 자신의 입장표명 부분이다. 그는 자신이 정립에 이바지한 주체사상이 인본주의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했으나 필자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주체사상은 겉으로는 「사람 중심의 사상」이란 모습을 띠고 있으나 속으로는 철저히 「김일성 중심의 사상」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김일성 우상 숭배」와 그것을 통한 「김일성 왕조 건설」을 위한 경전으로 고안된 하나의 「미신」이다. 따라서 주체사상이 뒷날 변질됐기에 실망하고 고민하게 됐다는 진술은 아마도 자기변명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학준(인천대총장/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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