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권은 언제 어떻게 변할까」. 북한의 식량난에 관한 국제적인 보도가 올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봇물을 이루면서 느껴지는 생각이다. 유엔기구와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사들은 식량부족으로 인한 기아실태를 다양하게 전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의 참상을 전하면서 우리와 국제사회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고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언론의 보도내용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사위기에 있는 사람이 8백여만명이다, 조만간 대참사가 닥칠 것이다, 인육까지 먹었다, 또는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는 등 혼란스러운 점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 아무리 많이 원조한들… ▼ 기아현상을 보는 문화적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는 모습은 잘사는 서구인이 볼 때 처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빈곤의 역사를 경험했던 동양적 시각은 다소 다르다. 남한도 그런 생활을 벗어난건 아직 30년이 안된다. 40대후반 이상의 상당수는 춘3월의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들판에서 쑥과 나물을 뜯고 산에서 칡뿌리를 캐먹으며 허기진 배를 물로 채워야했던 때가 있었다. 중국도 문화혁명때 굶어 죽은 사람이 5백여만명이나 됐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북한의 식량난을 보는 중국의 시각도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 그러나 기아와 식량지원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몇가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의 식량난은 「체제에 의한 빈곤」이란 점이다. 이같은 체제빈곤현상은 식량뿐만 아니라 생필품과 산업생산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정신적 공허감과 무기력도 역시 마찬가지다. 구소련을 포함한 동구공산주의국가의 붕괴도 바로 체제빈곤에서 출발했다. 창의와 경쟁이 부정되고 인간성을 억제하는 획일주의 때문이었다. 동구 각국이 그렇게 넓고 비옥한 농토를 갖고 있으면서도 극심한 식량난을 겪어야 했고 몇몇 나라에선 식량폭동이 일어났던 배경도 체제빈곤 때문이었다. 북한의 식량난도 이와 다를바 없다. 식량원조를 아무리 많이 한들 북한정권의 체제가 변하지 않는 한 총체적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식량원조가 당장의 기아는 면하게 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북한의 현체제가 계속될수록 빈곤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다. 둘째는 식량난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 정확한 정보가 없다. 우리나 국제사회도 북한의 기근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사회는 관련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면서 정확한 사실확인을 허용치 않고 있다. 국제기구나 외국인사들이 둘러본 기아현상은 북한당국이 안내한 극히 제한된 지역의 모습뿐이다. 심지어 부족식량의 추정도 2백만t에서 평양정권의 6백만t 주장까지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평양은 식량지원을 호소하고 외국주재 북한외교관들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말을 믿어야 할까. 셋째는 국내외적으로 대북식량지원 의사도 어정쩡한 분위기다. 북한의 행태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국민은 굶주리고 있는데 죽은 사람의 생일잔치와 기념비건립에 수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막대한 군사비를 구호사업에 돌리려는 성의도 보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정치적 고립과 철저한 폐쇄정책, 불투명성 등으로 인도적 동정심마저 빼앗아 더 많은 원조를 얻고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막고 있다. ▼ 체제 개혁없인 악순환 ▼ 우리는 배고픔을 알기 때문에, 더구나 같은 핏줄이 굶고 있는 걸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선뜻 내키지 않는다. 왜? 북한은 이제 현실적으로 변해야 한다. 평화회담에서의 남한배제, 걸핏하면 겁주기식의 전쟁협박, 「김일성 김정일권력의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온갖 무리수도 이젠 바꿀 때가 됐다. 남한과의 소모적 대결을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걸 알 때도 됐다. 북한정권이 살려면 스스로 개혁하는 길밖에 없다. 최맹호(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