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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창/일본 오사카]끝나지 않은 「고베의 비극」

입력 | 1997-05-20 08:54:00


우리 가족이 한신대지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고베에 도착한 것은 지난해 3월. 엄청난 재앙이 몰아닥친지 1년2개월이 좀 넘은 때였다. 세계 제2위의 경제선진국에서 6천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은 일본에 투하된 두번째 원폭에 비유할 만한 그야말로 엄청난 비극이었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오사카에서 고베에 이르는 중심고속도로의 일부 구간이 수리 때문에 개통되지 않아 불편을 겪었다. 지진이 휩쓸고간 거리마다 수리 복구를 하느라 법석이었다. 그러나 2년반이 지난 지금은 허물어진 집과 도로들이 대부분 말끔히 신축 보수됐다. 고베시 중심가인 산노미야거리에는 2만송이의 튤립이 그 잔인했던 대지진을 잊게 하려는 듯 활짝 피어 있다. 산노미야의 싱그러운 튤립처럼 정말 대지진의 상처는 아문 것일까. 불행히도 우리 가족이 사는 로코아일랜드 앞뒤편에는 지진으로 집을 잃고 가설주택에 사는 1천6백여가구가 아픈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노인 등 저소득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 가설주택 단지는 고베시가 속해 있는 효고현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다. 지난해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관서지역의 불볕더위에 지붕 벽 등 그야말로 가설인 그 좁은 공간에서 말할 수 없이 고생하는 그들을 보았다. 언제 이 가설주택을 벗어날 수 있을지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나마 이 가설주택도 내년까지만 살 수 있어 늘어나는 것이라고는 한숨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회의 무관심과 몰인정 속에서 그동안 1백50여명이 병으로 죽거나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론은 이들의 죽음에 고독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실제 병들어 숨진 경우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마신 지나친 술로 인한 알코올성 간질환이 압도적이라 한다. 그뿐인가. 오사카 경찰이 잡은 한 사기꾼은 지진 피해자 노인들을 찾아가 시에서 나왔다고 속인 후 찬조금을 부탁해 돈서랍을 딴 뒤 눈 깜작할 사이에 돈을 훔치는 신종기술을 선보였다. 이렇게 훔친 액수가 무려 4억3천만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일본이 이들을 언제까지 이대로 놔둘 것인지 안타깝다. 김상관(오사카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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