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英勳 기자] 지난 91년 수서사건 당시 대검중수부는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을 구속수감한 뒤 바로 여야의원 5명을 전격 소환조사했다. 이때 이들 여야의원들은 검찰청사에 출두하면서 『나는 정회장과 일면식도 없다』 『검찰이 나의 무고함을 밝혀줄 것이다』고 큰소리쳤지만 모두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정총회장이 구속된 지 이틀만의 일이었다. 「한보특혜대출의혹사건」의 주역인 정총회장이 지난 30일 일단 부정수표단속법 및 상호신용금고법 위반혐의로 구속될 것이 확실해지자 검찰수사의 표적이 정치권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조심스런 태도다. 검찰의 한 수사관계자는 31일 『아직까지 정총회장이 금품을 받고 한보측을 위해 대출청탁을 해준 정치인은 물론 수서사건 때처럼 돈을 뜯어내기 위해 접근한 「미운털 박힌」 정치인에 대해서도 전혀 불지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수사관계자는 한보그룹 金鍾國(김종국)전재정본부장 등 임직원들도 검찰에서 『(정총회장이)정치인들에게 인사를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고 잡아떼고 있어 수사에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또 수서사건 때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이어서 사실상 수사기관이 마음대로 계좌를 들춰볼 수 있었고 정총회장의 입을 열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도 계좌추적의 결과였다. 당시 검찰은 해당 의원들의 계좌에 거액의 돈이 들어간 사실을 확인한 뒤 정총회장을 추궁해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실명제 실시 이후 돈세탁 방법은 더욱 교묘해진 데다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지 않고서는 의심이 간다는 이유만으로는 정치인들의 계좌를 뒤질 수도 없어 수사가 어렵다는 것. 검찰은 지금까지 한보측으로부터 압수한 장부 등 관련자료에서도 전혀 정치인들의 비리를 밝혀낼 단서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관계자는 『한보측이 미리 (압수수색에)대비한 듯 그야말로 백지와 같이 장부가 깨끗했다. 정총회장도 전혀 입을 열지 않고 있어 잘못하면 검찰이 망신당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검찰내부에는 이번 수사의 결과에 대해 벌써부터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잘못하면 국회의원 5명과 청와대비서관 건설부국장 등을 구속한 수서사건 만큼의 수확도 거두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 검찰의 고민은 정총회장의 입을 열 「비장의 무기」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구속수감된 정총회장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입을 열지 않는 한 한보와 정치인들의 뒷돈거래에 대한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