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承虎기자] 한보가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5조여원의 자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한보의 부도로 5조원의 행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한보의 대답은 물론 『당진제철소에 전액 투자했다』는 것이다. 워낙 공장 건설자금이 달리면서 작년 하반기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이 자금팀에 『비상이 섞인 돈이라도 구해오라』고 지시할 정도였던만큼 돈이 다른 곳으로 흘러갈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9월경부터 한보의 자금줄은 바짝 말랐다. 「한보의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소문이 돌면서 제2금융권이 돈줄을 끊었고 융통어음 차환발행이 안되면서부터였다. 이 때문에 작년말부터는 계열사별로 직원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는 일이 잦았고 직원들의 불만도 많았다. 자금이 워낙 모자라다보니 「헐값에 밀어내기식 수출」에 전력 투구, 작년하반기에는 철강경기의 전반적인 부진에도 불구하고 한보의 철강수출액만 급증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작년말 은행단에 긴급자금 4천억원을 요청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으며 솔직히 말해 소위 「괴자금」에도 꽤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보의 한 고위 자금담당임원은 설명했다. 그러나 그 전까지 한보는 꽤 큰 돈을 풍족하게 주물렀고 이 돈중 상당액은 「더 큰 돈을 구하기 위한 투자」, 즉 로비자금으로 투입됐을 것으로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특히 정총회장은 큰 돈은 직접 혼자 관리하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정총회장은 또 「떡값」을 전달하는 등 로비를 할 때면 씀씀이가 워낙 큰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력인사의 길흉사에 부조를 할 때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액수보다 「0」이 하나 더 붙었다고 한다. 당연히 엄청난 규모의 로비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며 금융권으로부터 조달한 자금의 상당액이 이같은 용도로도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자연스레 나온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은행돈은 사후관리가 엄격해 용도를 전용하기가 쉽지 않다』며 『사채나 제2금융권에서 조달된 돈이 주로 로비용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