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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25)

입력 | 1996-11-26 19:58:00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32〉 애리는 내 기분에는 아랑곳없이 말을 잇는다. 『언니! 엄마 내일 저녁에 오시라고 할까? 내일 시간 낼 수 있어?』 『아니』 학교 강의는 거의 다 종강을 했지만 내일은 박지영의 부탁으로 그녀와 함께 어느 젊은 문화단체의 세미나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다. 『세미나? 무슨 주제인데?』 『넌 정말 알고 싶은 것도 많다. 동성애에 관한 거야』 『그래? 그럼, 언니! 이 얘기는 들어야 해. 에스모드에 같이 다니던 친구가 해준 얘기야. 걔네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건이래. 아래층에 아이 둘을 데리고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남편 친구라는 남자가 찾아왔더래. 근데 이튿날 남편과 그 친구라는 남자가 함께 도망을 쳤다는 거야. 불륜의 여자와 남자가 눈이 맞아서 손 붙들고 도망친 것도 아니고, 남자끼리 야반도주를 했다는 말 듣고 얼마나 웃기던지. 하지만 거기에 사는 게 익숙해지면서 점점 그런 것이 개인성과 자유를 존중하는 프랑스의 한단면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 『응, 특히 패션 쪽에 남자 동성애자가 아주 많아. 자기들끼리 굉장히 우호적인가봐. 동성애자 디자이너는 같은 동성애자를 채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짜 호모 행세를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야. 패션 말고 연극 무용 쪽에도 에이즈로 죽은 사람이 많고』 프랑스에서는 중고등학교에 콘돔 자동판매기가 설치되어 있다면서 애리는 『우리 나라하고는 생각이 많이 달라』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조건 성도덕이니 건전한 가정 따위를 강조해서 문제를 억압으로 해결하려고 하잖아. 그런다고 해결이 될 일이야? 프랑스 사람들 방법이 훨씬 현실적이고 효과도 있어. 프리섹스를 나쁜 짓이니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야. 하고 안 하고는 당신 마음이고 다만 에이즈 예방을 위해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할 뿐이야』 프랑스 보건부에서 에이즈 방지를 위해 콘돔을 사용하라고 계몽하는 문안은 나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당신이 소피양과 관계를 가질 때 발레리양을 보호할 것을 생각하라」.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로는 소피고 발레리고 할 것 없이 그런 문란한 관계는 싸잡아 천벌을 받아야 한다고 흥분할 것이다. 그런 다음 뒤돌아서서는, 소피, 어디 있어? 이봐, 발레리? 하고 찾아나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