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본부〓李圭敏특파원」 유엔이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의 연임여부를 놓고 설립이래 보기 드문 내부진통을 겪고 있다. 유엔 외교가에서는 현실적으로 미국이 양보하지 않는 한 그의 연임은 이미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무엇때문에 미국이 전세계적인 여론에 등을 돌리면서까지 부트로스 갈리를 쫓아 내려고 하는 것일까. 미국이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는 『그가 유엔의 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좀 더 능력있는 인물이 사무총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이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그가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지난번 대통령선거전때 공화당측이 『클린턴과 부트로스 갈리가 유엔에서 미국의 위상을 격하시킨 장본인』이라고 공격했던 것도 그런 분위기를 입증하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외교관들은 갈리를 미대통령선거의 희생양이라고 여긴다. 사실 그의 재임중 미국은 여러차례 난처하고 창피한 경험을 했다. 이라크에 대한 석유금수조치나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시한의 연장문제를 다룰때마다 이슬람국출신의 갈리총장은 미국의 강경입장에 동조하기 보다 제삼세계의 여론을 더 의식해 온건한 입장을 취해왔다. 특히 쿠바가 미국의 민항기를 격추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는 유엔이 한시적인 경제제재조치를 선택토록 함으로써 무력제재를 추구하던 미국의 미움을 샀다. 유엔헌장에 따르면 총회에서 회원국의 절반이 찬성하면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안보리결정을 무시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을 것같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의회가 유엔을 저평가하고 있는 시점이고 이러한 때 유엔이 미국과 정면대결하게 되면 어려워지는 것은 유엔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초강국인 미국의 의지대로 끌려가게 될 전망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국제기구의 총장이 비록 전세계적인 지지를 받더라도 미국 한나라의 비위를 거슬릴 경우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악성 교훈을 남기고 막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73)의 연임이 사실상 좌절된 가운데 세계 외교의 차기 「수장」으로는 물망에 오른 5명의 후보중 2명의 아프리카 후보가 유력시되고 있다. 이들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담당 사무차장인 코피 아난(58), 아프리카단결기구(OAU)총장인 살림 살림(42),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대통령인 메리 로빈슨(52), 노르웨이총리 그로 브룬틀란트(57), 그리고 일본출신 유엔고등판무관(UNHCR) 오가타 사다코(緖方貞子·68)이다. 이들중 미국의 거부권행사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OAU의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아프리카 출신 후보들이 차기 유엔총장에 선출될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은 갈리총장만 제외한다면 어느 후보라도 수용할 의사를 밝혔다. 더구나 지역안배라는 관례대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차기총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미국도 양해하고 있다. 우선 온건주의자로 알려진 아난사무차장. 가나출신인 그는 92년 이래 PKO를 무난히 이끌어왔다는 평을 받는 인물로 회원국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있다. 스웨덴여성과 결혼한 그는 영어 프랑스어 이외에 여러나라 말에 능통하다. 탄자니아 부통령을 지낸 OAU의 살림총장은 유엔내에서 강력한 단결력을 과시하는 기구의 수장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외교관출신으로 중국과 북한 대사를 역임한 그는 교제의 폭이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89년 이래 OAU를 이끌고 있다. 그동안 언론의 조명을 받아온 3인의 여걸(女傑)중에서는 오가타가 선출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얼마전 『클린턴 美대통령이 차기총장으로 가장 선호하는 인물』로 그녀를 소개했다. 하버드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로빈슨 아일랜드대통령은 활발한 로비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내년말까지 임기가 남아있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81년 최연소 총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브룬틀란트총리는 리우 환경회의의 초석을 성공적으로 놓은 환경전문가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