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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피해자의 보복살인극… ‘연상호 디스토피아’ 영역 확장

학폭피해자의 보복살인극… ‘연상호 디스토피아’ 영역 확장

Posted March. 30, 2022 08:42,   

Updated March. 30, 20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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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자인 연 감독은 29일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은 내가 처음 쓴 장편 시나리오였다”며 “당시 한국 계급사회의 비극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말했다.

 96분 분량의 원작은 중학교에서 일어난 야만적이고 지능적인 폭력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중1 교실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 아이들은 물리적 힘과 성적, 집안 형편을 기준으로 계급화돼 있다. 교사는 통제의 효율성을 명분으로 이를 묵인한다. 세 요소를 모두 가진 최상위 계급은 ‘사냥개’, 이들의 먹잇감이 되는 약자들은 ‘돼지’로 묘사된다.

 권력에 순응할 것인가, ‘돼지의 왕’이 돼 싸울 것인가. ‘돼지’들은 투쟁을 시도하지만 곧 무기력에 빠진다. 작품은 이듬해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초청을 받았고 “충격의 수작”이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드라마 역시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학교 폭력에 대한 현실감 넘치는 재현, 섬세한 심리 묘사로 호평을 받고 있다. 드라마 대본을 쓴 탁재영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나도 원작의 엄청난 팬”이라며 “원작을 좋아하는 분들이 드라마를 보며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원작은 학교 폭력이 일어난 당시의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 성인이 된 이들의 비중은 적다. 반면 드라마는 20년이 지나 성인이 된 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원작과 달리 가장 큰 피해를 당했던 경민(김동욱)은 성인이 된 뒤 가해자들을 연쇄 살인하고, 또 다른 피해자였던 종석(김성규)이 담당 형사가 돼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추가됐다.

 탁 작가는 “원작의 메시지를 살리면서 재미를 더하려면 스릴러 같은 몰입감 있는 장르와의 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연 감독은 “원작을 만들었을 당시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가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느냐’였는데 그 답이 드라마에 있다”고 했다.

 원작과 드라마 모두 학교 폭력을 묘사하는 수위가 매우 높다. 드라마는 가해자들에 대한 유혈 낭자한 복수 장면까지 더해져 일부 시청자는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탁 작가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인물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현재 하는 행동을 시청자들이 납득하려면 과거 사건을 현실감 있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사적 복수의 정당성과 카타르시스만을 강조하진 않는다. 연 감독은 “(원작도 드라마도) 카타르시스를 통한 대리만족을 목적으로 만든 작품은 아니다. 그런 카타르시스가 정당한가, 피해와 가해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가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했다.

 원작이 11년 전 나온 만큼 드라마는 현 시점에 맞게 설정과 배경을 많이 바꿨다. 다만 잔인한 학교 폭력과 가해자들, 이로 인해 정신을 갉아 먹힌 나머지 괴물이 된 이들은 그대로다.

 “사회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어떤 의지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의지가 있는지 개인적으론 잘 못 느끼고 있습니다. 11년 전 ‘돼지의 왕’이 보여준 디스토피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죠. 폭력은 예전보다 오히려 더 고도화되고 복잡해진 거 아닐까요?”(연 감독)


손효주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