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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 '열녀전' 보물지정 나선다

Posted October. 08, 2015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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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부녀자들의 법도가 문란해 못하는 것이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중략) 하지만 삼강행실도는 특수한 몇 사람의 뛰어난 행실이라 일반 서민과 부녀들은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바라옵건대 일상생활에 가장 절실한 것, 예를 들면 열녀전을 한글로 번역하고 간행해 반포하소서.

조선시대 경서 관리와 왕의 자문기관 역할을 하던 홍문관이 고한 내용이다. 이에 중종은 지당하다. 시행토록 하라고 답한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12년(1517년) 6월 27일의 기록이다. 당시 조선이 사회적으로 도덕성의 위기를 겪으면서 대안으로 중국의 열녀전을 번역해 배포하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열녀전은 원래 전한시대 학자 유향(기원전 776)이 쓴 원본에 후대 여러 중국 작가의 쓴 이야기가 섞인 것으로, 허구가 섞인 삼국지연의 같은 문헌소설이다. 중국 역사 속 성녀와 악녀 등 다양한 여성의 삶을 다뤘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4년(1404년) 기록을 보면 명나라에서 열녀전 500부를 수입했다는 기록도 있다.

문헌 기록으로만 알려졌던 16세기 한글판 열녀전이 발견돼 한글날(9일)을 앞두고 보물 지정이 추진된다.

국립한글박물관은 7일 조선 초기 고열녀전() 언해본을 입수해 보물 지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언해()는 한문 원전을 한글로 번역한 것을 뜻한다.

이 책은 가로 20.5cm, 세로 31.5cm 크기로 총 40장으로 구성돼 있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그림도 13장이나 포함돼 있다. 에피소드마다 그림이 먼저 나오고 이어 한문, 한글이 동시에 나온다.(그림 참조)

이 책은 1543년 문장 실력이 뛰어난 문인 신정과 유항이 번역하고, 서예가 유이손이 글을 썼다. 중국 열녀전 속 고개지(344466년)의 그림은 한글판에서는 중종 당시 천재화가로 통한 이상좌가 다시 그렸다. 고문연구가 박철상 씨는 한글판 열녀전은 임금의 명으로 번역, 간행되면서 당대 최고의 인물들이 작업에 참여했다며 번역과 글씨, 그림 등의 수준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출판물이라고 설명했다.

열녀전에 얽힌 조선 왕실의 흥미로운 사연도 있다. 실록 속 세종은 이렇게 말한다. 봉 씨에게 열녀전을 가르치게 했다. 그런데도 감히 이 같은 무례한 짓을 하니, 어찌 며느리의 도리에 합당하겠는가! 세종이 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 씨가 음주를 즐기며 동성애에 빠지자 성리학적 윤리관을 갖도록 열녀전을 읽게 한 것이다.

조선 왕실은 왕궁에서 읽히던 열녀전을 한글(당시 언문)로 번역해 백성들에게 보급하자는 정책이 제안되자 1543년(중종 38년) 국립인쇄기관 교서관을 통해 한글 번역을 시작했다.

한글박물관이 입수한 이 책은 2013년 미술품 경매에서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냈고 2000만 원 정도에 고미술 전문가 김영복 씨에게 낙찰됐다. 김 씨는 이 책을 다시 선문대 연구팀에 사료로 제공했고 연구과정에서 가치가 높은 진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후 한글박물관에서 김 씨를 설득해 7000만 원에 구입했다. 고은숙 한글박물관 연구관은 15, 16세기 중세 국어 자료는 매우 드물다며 현대어로 번역해 11월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