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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전에 세계인 입니다

Posted December. 16, 200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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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파키스탄, 독일, 과테말라, 짐바브웨,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루마니아, 카메룬, 브라질.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31층 군축부에서 전문직(Professional이하 P직급)으로 근무하고 있는 정담(45) 씨에게 동료들의 출신 국가를 물어봤더니 그는 한참이나 손가락을 꼽았다. 군축부 P직급 30명의 출신 국가는 20개가 넘었다. 유엔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이처럼 국적이 다양하다. 하긴 회원국이 192개나 되니.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은 245명. 내년 1월 1일부터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지휘하게 될 유엔본부도 한국인 직원이 22명에 이른다. 유엔본부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4명과 인터뷰를 하면서 국제기구에서 일하게 된 경위, 보람과 애환을 직접 들어봤다.

미사일전문가서 건축설계사까지

정 씨가 일하는 군축부는 소형화기와 대인지뢰 등 재래식 대량살상무기(WMD), 지역군축, 군축회의 지원, 사무총장의 군축업무 지원 임무를 맡는다. 정 씨는 이 중에서도 WMD와 미사일 전문가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한 차기호(40) 씨는 이라크 전문가. 2003년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유엔을 대표해 이라크를 방문한 뒤 상황 보고서를 작성해 사무총장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공보부에서 일하는 서석민(35) 씨는 홍보 전문가.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서 씨는 회원국에 유엔의 업무를 알리는 역할과 함께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에서 유엔의 빈곤퇴치 활동을 홍보하기도 한다. 인터넷, 라디오, TV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한다.

평화유지군 엔지니어링 부서에서 일하는 노수미(34) 씨는 건축설계사.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 위해서는 숙소를 비롯해 시설물이 많이 필요한데 관련 지원업무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업무차 중국과 이탈리아에 출장을 다녀왔다.

다양한 세계문화 이해는 기본

서 씨는 유엔에서 근무하면 한국보다는 오히려 다르푸르 문제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질 정도로 국제적인 시각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며 한국식 사고방식을 유지하면서 유엔 근무를 하면 생활이 피곤해진다고 말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특수한 작업 환경도 적성이 필요한 대목. 정 씨는 평생 처음 들어본 나라 출신도 있다. 그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무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다른 문화, 다른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국제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유엔에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 씨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무실에 유엔문화(UN culture)라는 것이 형성된다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하지만 어떤 점에 있어서는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차 씨는 근본적으로 인류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없으면 유엔 근무가 짜증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별 채용시험 거쳐 선발

민간기업에서 근무하던 정 씨는 1995년 유엔이 주관하는 국가별 채용시험에 합격해 유엔 근무를 시작했다. 이 시험은 유엔 예산분담액에 비해 유엔 근무 직원이 적은 나라의 국민을 대상으로 치르는 시험.

서 씨는 유엔에서 인턴을 하다 그 분야에서 빈자리가 생겨 일하게 됐다. 그러나 인턴을 거쳐 유엔 근무를 하게 되는 사례는 매우 드문 편이다.

차 씨는 우여곡절 끝에 유엔에서 일하게 된 사례. 그는 1992년 국가별 채용시험에 합격했지만 자리가 없어 5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어 사실상 유엔 근무를 포기했다며 그래서 로펌에 취직했는데 갑자기 빈자리가 생겨 유엔 근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 씨는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 유엔에서 건축설계사를 뽑는다는 공지를 발견하고 2002년 국가별 채용시험에 합격한 뒤 2년 만에 발령을 받았다며 정무()같은 다른 직종에 비해 오히려 공과계통을 전공한 것이 유엔에 취직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물가 비싸 풍족한 삶 어려워

보수는 괜찮은 편이지만 본부 근무의 경우 뉴욕의 비싼 물가를 생각하면 아주 높지는 않다는 것이 이들 4명의 공통적인 지적이었다.

정 씨는 1에서 5까지 있는 P직급에서 두 번째로 높은 P4. 그의 연봉은 13만 달러(약 1억2350만 원)다. P2 직급인 서 씨 연봉은 8만7000달러(약8265만 원). 뉴욕 일대는 집값과 교통비가 미국에서 가장 비싼 지역이어서 이 정도 소득으로 풍족하게 살기는 어렵다.

정 씨는 돈을 벌려면 유엔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혼으로 맨해튼에서 살고 있는 서 씨는 임대료를 내고 기타 잡비를 쓰고 나면 저축하는 돈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년이 62세까지 보장되고, 연금이 다른 직종에 비해 괜찮은 것은 큰 매력이다. 휴가를 1년에 한 달 정도 쓸 수 있고, 자녀교육비도 70%(최고 한도는 2만 달러까지) 지원해 주는 등 복지혜택이 좋은 것이 장점이다.

또 네 사람은 업무가 공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민간기업에서는 잘 모르는 만족감을 느낄 수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회원국이 192개나 되는 공조직이어서 조직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타성에 젖은 직원들도 적지 않다.

정 씨는 유엔 조직의 특성상 업무를 소홀히 하는 직원이 있어도 제대로 제재를 가하기가 쉽지 않다며 사무국 개혁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공종식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