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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브라 전쟁

Posted August. 30, 200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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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 상태까진 아니지만 막스 앤드 스펜서 매장 속옷 코너는 분명 긴박한 상황이었다. 브래지어, 특히 값이 싼 제품이 영국 전역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중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이 지난 주말 전한 B컵의 무역 파동 중 한 토막이다. 유럽연합(EU)이 역내 섬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산 섬유제품 수입을 묶자 옷값에 민감한 영국 여성들 사이에선 빨리 값싼 브래지어를 사 두려고 난리가 났다. 이름 하여 브라 전쟁이다.

31년간 규제해 온 섬유제품 수출 국가별 물량 쿼터가 올해 1월 1일 풀리면서 중국산 제품이 유럽과 미국에 물밀듯이 쏟아졌다. 중국의 가격경쟁력을 따를 나라가 없어서다. 놀란 미국 의류업자들이 봄에 중국 의류 수입규제를 거세게 요구한 데 이어 이젠 유럽 차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쌀에 EU는 6월 중국에 대한 쿼터제를 재도입했다. 벌써 올해치 쿼터를 초과한 중국 제품 8000만 장이 항구에 묶였다.

무역 분쟁을 빚는 섬유제품이 브래지어만은 아니다. 실상 매장에 못 들어온 채 세관에 묶인 브래지어는 300만 개뿐이고 스웨터와 바지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굳이 브라 전쟁이라고 하는 건 봉긋한 속옷이 지닌 자극성과 상징성 때문이다. 1960년대 말 미국의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해방을 부르짖으며 브래지어를 불태운 것이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리는 것처럼.

섬유산업 보호 명분으로 시작된 브라 전쟁이지만 피해자는 오히려 저소득층에서 나온다. 유럽 제품보다 40% 싼 중국산 브래지어의 수입 물량이 줄면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비싼 제품을 사야 하는 이들은 바로 저소득층이기 때문이다. 브래지어는 시작일 뿐, 값싼 중국산 전자제품이 밀어닥치는 것도 시간문제다. 중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싼 물건은 중국에 맡기고, 아군()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비싸게 팔아야 한다. 미국과 유럽이 지식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학교 개혁에 기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