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불법 어떻게 저질렀나

Posted August. 06, 2005 06:18,   

日本語

# 사례 1

2000년 초 중앙 일간지의 한 언론인은 평소 친분이 두터운 국가정보원 고위 관계자로부터 휴대전화 걸 때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언질을 받았다. 국정원이 휴대전화를 도청할 수 있는 새로운 기계를 도입했으니 대화를 나눌 때 유의하라는 얘기였다. 이 언론인은 당시 등골이 오싹했다고 전했다.

# 사례 2

1999년 어느 날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의 보좌관 A 씨는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외부로 전화를 걸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수화기를 통해 자신이 전날 외부 인사와 통화한 내용이 그대로 녹음돼 들려왔기 때문이다.

A 씨는 정보기관이 녹음해 둔 대화 내용이 뭔가 기술적인 착오에 의해 이 수화기에 다시 연결돼 흘러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5일 국정원 발표에 의해 김대중(DJ) 정부 시절 불법 도감청 및 휴대전화 도청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누구를 대상으로 불법 도감청이 이뤄졌으며 그 정보는 어떻게 활용됐을까.

도청 대상자는 누구, 어떻게 활용됐나=국정원은 이전 정부에 비해 대상과 규모가 줄었으며, 관련 자료가 폐기됐고 담당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 구체적인 내용이나 대상자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두 사례에서 보듯 유력 정치인과 정권에 비판적인 중견 언론인, 고위 관료 등에 대한 광범위한 도감청 작업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김승규() 국정원장까지도 이날 법무부 장관 때 도청당하는 게 아닌지 불안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도감청 대상자와 관련된 블랙리스트도 작성돼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2002년 3월까지 도청이 지속돼 왔다는 국정원 발표로 미뤄 당시 각 당의 유력 대선후보에 대한 도감청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보기관 입장에서 대선 향배가 최고의 관심 대상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국정원은 국민의 정부 시절 여야 후보를 대상으로 한 감청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불법 도감청으로 취득한 정보는 극소수의 권력 핵심에게만 전달됐을 것으로 보인다.

권력 실세들은 특히 권력 비판 성향을 띠고 있는 언론인들을 만나 다 알고 있다며 협박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압박 수단으로 활용됐을 가능성도 높지만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권력 내부 암투에도 활용됐다는 흔적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권노갑()-한화갑() 갈등 무렵에 국정원의 한 차장급 인사가 청와대 주변과 김 전 대통령 측근들을 도감청한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DJ에게 보고됐나=국정원은 김 전 대통령의 불법 도청 사실 인지 및 정보보고 여부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불법 감청을 없애라고 했기 때문에 위에까지 보고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김 전 대통령 측 최경환() 비서관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은) 옛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최대 희생자로서 역대 국정원장에게 도청과 정치사찰 공작 미행감시 고문을 없애라고 지시했고, 퇴임할 때까지 계속 그런 의사를 강조했다면서 어떤 불법 활동도 보고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신건() 전 원장도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불법 도청 중단을 지시했다. 1차장 때도 불법 도청과 관련된 어떤 정보도 보고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정보 수집활동에 대해 권력기관의 수장이나 최고 권력자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정용관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