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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급봉투

Posted January. 25, 200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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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은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대한민국 가장()의 권력은 월급봉투에서 나왔다. 월급을 현찰로 받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월급날은 모처럼 남편이 마누라에게 큰소리를 치는 날이었다. 습관적으로 바가지를 긁던 아내도 이날만은 술상을 차려놓고 다소곳이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아내들의 이런 조바심을 모른 채 도박이나 음주로 날밤을 새우고 새벽녘에 귀가해 빈 봉투를 내놓는 간 큰 남편들도 있었다.

가장의 입장에서 돌이켜 보면 참 좋았던 시절이었다. 이것저것 떼 내 홀쭉하게 줄어들긴 했지만 월급봉투를 양복 깊숙이 품고 돌아가는 퇴근길은 유난히 발걸음이 가벼웠다. 만일에 대비해 만원 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소심한 남편이 있었고, 한복 차림에 큰절로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아내도 있었다. 보통 아내들은 아예 연말정산이나 연월차수당 제도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어쩌다 입이 싼 동료가 송년회 같은 데서 잘못 발설해 배달사고가 들통 나면 대판 부부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원 단위 동전 하나까지 지불하려면 경리과 직원들이 며칠씩 고생해야 했다. 월급날 오후가 되면 회사 주위 술집과 음식점 종업원들이 외상값을 받기 위해 쳐들어오고, 그들과 숨바꼭질하는 것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월급 지급 방식이 자동이체로 바뀌면서 이런 풍경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마누라에게 밀리고 자식들에게 치인 한국 가장의 지위는 월급봉투의 소멸에서 발단()했다. 혹 여성계의 음모는 아니었을까?

가톨릭 종합매스컴인 평화방송-평화신문이 25일 지급한 1월분 급여부터 현금 지급으로 월급 지급 방식을 바꿔 화제다. 오지영 사장신부는 가장의 노고를 온 가족이 고마워하면서 갈수록 위축되는 가장의 위상을 되찾게 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의 고뇌를 충분히 알 수 없는 사장신부님이 사목()적 판단에서 이런 용단()을 내렸다고 하니 더욱 고마운 일이다.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