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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냄비의 추억

Posted December. 16, 200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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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본적인 화해의 상징은 악수다. 식사를 같이하면 화해가 안정기에 접어든 것으로 본다. 부부동반으로 골프를 치거나 여행을 같이하는 단계로 발전하면 관계의 복원을 넘어 짝짜꿍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상징하고, 자녀들 간에 혼담이 오가면 당사자는 물론 가족 전체를 신뢰한다는 의미가 된다. 동성() 간에는 목욕을 같이 하는 사이, 이성() 간에는 잠자리를 함께하는 관계가 최상의 친밀()로 간주된다.

세계 외교사에는 스포츠와 동물이 종종 화해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미국과 중국이 1970년대 초 핑퐁 외교와 세계적 희귀 동물 판다 선물로 오랜 적대 관계를 해소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러시아에서 망명한 첼리스트 로스트 로포비치가 독일 통일 직후 허물어진 베를린장벽 앞에서 격정적으로 연주한 것과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를 몰고 북의 고향을 찾아간 목가적 풍경은 금세기 동서 및 남북 화해의 결정판으로 손색이 없다.

남북한 정상이 2000년 55년간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화해의 상징으로 주고받은 선물은 진돗개와 풍산개였다. 엊그제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에서 출시한 첫 메이드 인 개성 제품이 냄비라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접시에 음식을 각자 나눠 먹는 외국과는 달리 한국은 한솥밥과 한냄비에 끓인 국을 함께 퍼 먹는 전통을 갖고 있다. 때문에 한국인에게 냄비는 단순한 음식 담는 그릇이 아니라 가족애와 화합의 용기()인 것이다.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식구()는 한솥, 한냄비에서 나온 음식()을 같이 퍼 먹는 입()인 것이다.

출하 당일 남쪽으로 반출된 냄비 1000세트는 서울 한 백화점 특설매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실향민들이 주된 고객이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북에서 온 냄비는 보통 그릇이 아니라 부모 형제의 유품 또는 손길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서울깍쟁이가 울고 간다는 개성 깍쟁이가 만든 제품이어서 더욱 신뢰가 간다. 개성 냄비에 한민족의 진정()과 정성()을 버무려 남북간의 긴장이 해소되고 갈등 또한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