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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모 노릇 파업

Posted December. 13, 2004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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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 소지자인 어느 커리어우먼은 웬만해서는 자녀의 심부름을 해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대여섯 살 때부터 물 한 잔도 네가 떠다 먹어라고 가르치곤 했다. 그녀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엄마라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어차피 자식들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줄 시간도 능력도 없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그렇게 훈련하기로 독하게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자식이 원한다면 찬물, 더운물은 물론 미지근한 물까지 떠다 바치는 대다수 한국의 어머니들은 참 별난 여자도 다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최근 미국의 한 부모가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는 남매에 맞서 음식도 안 만들고 청소도 해 주지 않는 등 부모 노릇 파업(Parents On Strike)에 들어갔다. 18세가 되면 스스로 독립된 삶을 꾸려 나가는 풍토인 미국 부모의 심사가 이러할진대, 결혼 이후에도 자녀들 뒤를 돌보아 주는 대한민국 부모의 심정은 물어보나 마나다. 파업 중인 미국인 부부가 세상의 모든 부모들을 대신한 자식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기를 학수고대한다.

얼마 전 방영된 김수현 원작의 SBS 창사특집드라마 홍 소장의 가을도 부모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결혼식 때 들어온 축의금을 나눠 달라고 보채는 자녀들에게 착하디착한 엄마는 단호하게 말한다. 나 돈 안 줄래. 전부다 내 돈 할 거야. 나도 통장에 돈 좀 가져 보자. 사람이 감사할 줄 모르면 안 돼. 다들 공부시켜서 짝 채워 줬으면 됐지 더 뭘 바라. 순 싸가지들이라니까. 이 말이 남다른 감동을 준 것은 대한민국 모든 부모들의 심사를 대변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에는 세상에서 가장 악성() 보험은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자식들은 정말 부모 고마운 줄 모른다. 부모는 자식이 한 가지만 잘해도 감지덕지하지만 자식은 부모가 한 가지만 잘못해도 불평을 쏟아낸다. 부모는 찬밥 먹고, 자식은 더운밥 먹는 세상이다. 부모가 이렇게 자식들 눈치 보는 사회가 또 어디 있는가. 한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당장 자식들한테 바치는 돈을 절반 이하로 줄여야 부모의 안락한 미래가 보장된다고 외친다. 만국의 부모들이여, 단결하라.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