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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장서 한평생' 86세 주인 이영구씨

Posted March. 18, 2017 08:44,   

Updated March. 18, 201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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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 깊은 한국 최초의 민간 산장입니다. 이곳에서 구조한 등산객이 100명이 넘어요. 제발 나와 아들이 계속 운영할 수 있게 해주세요.”

 백운산장 주인 이영구 씨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산장 통나무를 어루만지던 이 씨는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이곳에서 자라고 늙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1층과 2층을 합해 약 180m² 규모인 산장에는 없는 게 없었다. 1층에는 커피와 컵라면을 판매하는 매점, 2층에는 산장 투숙객을 위한 나무 침실이 마련돼 있었다. 산장 한쪽 벽면에 걸린 추억이 담긴 사진들과 색이 짙어진 통나무가 산장의 나이를 가늠케 했다.

 지난해 말 북한산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 씨에게 ‘올 5월 백운산장을 국가로 귀속한다’는 통보공문을 보냈다. 내용은 1992년 공단과 맺은 약정에 따라 이 씨가 산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 그는 “처음 공문을 읽고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해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고 말했다. 산장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은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단은 25년 전 일어난 화재였다. 1992년 6월 5일 등산객의 실수로 작은 불이 나 산장 지붕이 탔다. 당시 공단은 공사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때 공단 직원이 “기부채납 조건에 서명하면 공사도 하게 해주고, 산장도 계속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해 서명했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공단 측은 이 씨가 기부채납 약정서에 동의했기 때문에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공단 관계자는 “올 상반기까지 귀속할 방침이지만 정확한 귀속 날짜 등에 대해서는 이 씨와 계속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에게 산장은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자녀들도 모두 산장에서 키워 학교에 보냈다.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혹여 방 한 칸 얻을까 싶어 마련해 둔 돈도 모두 산장 운영에 쏟아부었다. 산악인과 등산객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40여 년 전 자비를 들여 돌계단도 만들었다. 조난객이 있으면 누구보다 앞장섰다. 인수봉 참사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고가 있을 때마다 직접 달려갔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시체가 암벽과 부딪쳐 내는 소리, ‘도와 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 정도로 생생하다”고 했다.

 백운산장 뒤에 작은 암자가 있지만 이 씨는 여전히 산장 안에 마련된 12m² 남짓한 방에서 잠을 잔다. 산장이 너무 좋아서다. 그는 인터뷰 내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 산과, 산악인과 함께 백운산장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지영 jjy20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