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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남자피겨 하뉴 330점 돌파 새 역사

Posted December. 14, 2015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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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 수성현 갈석산에서 (진) 장성()이 시작된다.

사기색은()과 통전() 등 각종 중국 사서에 나오는 기록이다. 학계 통설에 따르면 낙랑군의 위치는 현재 평양과 그 인근. 이 사서들의 기록을 근거로 1910년 일본인 학자 이나바 이와기치는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1982년 발간된 중국역사지도집과 최근의 동북공정, 2012년 12월 공개된 미 의회 조사국 보고서 등에도 반영됐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사료가 만들어진 시기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는 연구가 나왔다. 12일 한국고대사학회 학술발표회에서 공석구 한밭대 교양학부 교수는 해당 기록이 처음 등장했고 이후 사서들이 인용하는 태강지리지()는 낙랑군이 한반도 평양에 있던 때가 아니라 313년 고구려에 의해 축출돼 요서지방으로 교치(땅 이름을 다른 곳으로 옮김)된 뒤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진 장성이 시작되는 낙랑군은 한반도에 있던 낙랑군이 아니라 요서지방의 낙랑군이라는 얘기다.

공 교수는 진 장성 동단과 낙랑군 수성현 관련기록 고찰이라는 발표문에서 자치통감 등이 인용한 태강지리지에는 동진() 원제(재위 318323년)나 북위(386534) 시대에 일어난 일과 용어가 등장한다며 낙랑군과 장성 기록도 낙랑군 축출 이후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공 교수는 태강지리지 다음으로 낙랑군 수성현과 장성에 대해 기록한 사서인 진서()의 서술 역시 갈석산이 요서에 있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당 태종의 명령으로 648년 완성된 책이다. 태강지리지가 진 장성 동단과 관련해 갈석산을 언급하고 있는 데 반해 진서에는 갈석산이 빠져 있다.

공 교수는 진서의 편찬자들은 요동에 대한 영토의식을 기반으로 한반도 일부 지역까지 아우르는 낙랑군을 설명하려 했다며 갈석산이 요서에 있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자 편찬자들이 이를 빼버린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