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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전쟁 공습경보 (일)

Posted April. 06, 201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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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개혁은 통화가치의 하락과 실물자산의 가치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화폐개혁이 현실화되기 전에 부동산 투자를 늘리는 게 좋습니다.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부동산컨설팅회사 강의실. 빽빽하게 들어찬 20여 명의 중년 남녀는 모두 수십 억 원의 여유 자금을 보유한 고액 자산가였다.

이들이 평일 오전 바쁜 일정을 제쳐 두고 강의실을 찾은 건 화폐개혁과 부동산 투자라는 주제로 열린 투자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 대표의 설명이 한 시간 반 남짓 이어진 뒤 참석자들의 질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 회사 관계자는 최근 한국의 많은 부자가 화폐개혁 단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화폐개혁을 미리 준비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수도권에 300억 원대 빌딩을 갖고 있는 건축설계사 A 씨(36)는 최근 해외 부동산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해외에 10억 원대 주택을 살 계획인 그는 지난달에 직접 미국도 다녀왔다. 새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 기조와 관련해 화폐개혁에 대한 소문이 퍼진 게 해외로 눈을 돌린 계기였다. 화폐개혁이 현실화되면 원화 대비 달러 가치가 크게 상승해 해외에 사 둔 집에서 환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A 씨는 정부는 아직 계획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 조치는 갑자기 단행하는 경우가 많아 불안하다라며 미리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해외 부동산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의 칼을 뽑으면서 큰손들이 음지에서 들썩이고 있다.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의 히든 카드로 화폐 액면 단위를 낮추는 화폐개혁을 단행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 따른 세입 감소로 새 정부가 복지공약 실행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한낱 설()에 불과하던 화폐개혁 가능성을 고액 자산가들이 믿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나 화폐개혁으로 숨겨 둔 현금 자산의 규모가 노출되는 것을 우려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 들어 속속 관련 정책이 발표되고 있는 지하경제 양성화는 큰손들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아니다. 사채업자와 밀수업자에서부터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영세 자영업자, 고물상까지 세금을 회피할 소지가 높은 모든 경제 주체들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지하경제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에는 일치된 견해가 없다. 조사 방식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의 1030% 사이에서 학자들마다 주장이 제각각이다. 대략 20%로 잡고 지난해 GDP(1272조5000억 원)에 대입하면 250조 원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할 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 사실에는 전혀 이견이 없다. 지하경제는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래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문제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