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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삼청동 인사안가

Posted January. 31, 2013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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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감사원 터를 감싸는 울타리 너머엔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조금 올라가다 보면 한옥 한 채가 나타난다. 대지 200평에 건평 70평으로 조그만 별채도 하나 딸려 있다. 산속에 웬 집일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만하지만 사실 이곳은 청와대 안가()다. 밖에선 안 보여도 주변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어 집 안에서 바깥 동향을 체크할 수 있다.

이 안가는 대통령이 쉬는 곳이 아니라 청와대 직원들이 근무하는 공간이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의 공직기강비서관 소속 행정관 열댓 명은 매일 이곳으로 출근한다. 일이 많을 땐 꼬박 밤을 새우기도 한다. 경비원도 있고 창고처럼 보이는 별채에는 탁구대도 있다. 고위 공직자 후보로 추천된 사람을 몰래 불러 직접 신문할 때도 이곳을 활용한다. 청와대 행정관들은 감사원 기획재정부 검찰 국세청 기무사 소속으로 이른바 끗발 있는 부처 출신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안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장차관을 비롯해 3급 이상 고위 공직자들의 인사 검증을 주로 한다. 산속 사무실을 쓰는 이유는 인사 검증 과정에서 외부에 흘러나가서는 안 되는 개인정보를 많이 다루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사 파일이 보관돼 있는 고위 공직자는 1만 명이 훨씬 넘는다. 가족관계를 증명하는 호적등본과 전과기록, 납세기록, 병역기록, 토지대장원부 등은 물론이고 음주운전 여부 확인서와 논문 목록까지 갖고 있다. 전문가 15명이 달라붙어 장차관 등 정무직을 검증하는 데 보통 열흘가량이 걸린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1차 관문인 이곳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한 공직자는 검증 대상 1만6849명 가운데 452명이었다. 대부분 부동산 문제와 전과 병역 문제였다.

요즘 이 안가는 개점휴업() 상태다. MB정권 임기 말이어서 마땅히 검증해야 할 대상이 없는 탓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5년 전엔 이 안가를 쓰지 않았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주는 자료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대통령이 정권 초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인사로 지탄을 받은 것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이 안가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사 내용이 새 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보안의식과 역시 이명박 청와대에 대한 불신 때문인 듯하다. 박 당선인이 삼성동 자택에서 자신의 수첩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곳에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기초 자료라도 살펴봤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뒤늦은 감이 있지만 새 총리 후보자 인선과 조각() 과정에서는 인사 안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 영 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