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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최근 내셔널리즘 충돌 위험 고조 언론 균형추역할 중요 (일)

한일최근 내셔널리즘 충돌 위험 고조 언론 균형추역할 중요 (일)

Posted January. 26, 2013 05:02,   

日本語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지 오래됐다.

1970년 기자가 됐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전 방위청 장관과 동행해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판문점에서 북한이 판 제3땅굴을 보고 긴장감 속에 일본은 평화로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그 평화는 많은 희생 위에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다음 해인 1980년에는 자민당 의원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도 북쪽에서 판문점에 가 정반대의 긴장을 느꼈다. 두 가지 경험을 하고 한반도 문제는 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을 결심하고 1981년 9월 서울에 갔다. 이듬해에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으로 엄청난 반일 분위기가 생겼다. 그 속에서 일본을 생각했고, 한국을 생각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30년 이상 세월이 흘렀다. 43년간의 신문기자 생활에서 4분의 3은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와 인연을 맺어왔다.

두 나라 모두 많이 바뀌었다.

한국은 큰 변화가 있었다. 내가 처음 서울에 갔을 때는 군사독재 시절이었지만 이후 민주화를 이뤄냈고 동시에 매우 빠른 속도로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도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일 간에도 최근 10여 년 새 월드컵축구대회를 공동 개최하고 일본에 엄청난 한류 붐이 일어나는 등 30년 전에는 생각도 못한 변화가 나타났다. 아직 여러 문제가 있지만 국민 사이가 좋아졌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

일본은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과격한 학생운동이 이어지면서 시끄러웠다. 동시에 고도성장기 속에 공해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사회에 활력이 있었다. 지금은 매우 조용한 사회가 됐다. 고도성장도, 과격파도 사라졌다. 사회는 평온해졌는데 활력이 떨어졌다. 반대로 중국과 한국은 활력이 넘치고 있다. 그게 가장 큰 변화다. 일본의 미래도 걱정스럽다. 꿈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다. 일본의 좋은 점을 자각해 좀 더 노력해야 한다.

한일관계에서 느낀 점은.

가슴 아픈 일이 자주 있었다. 하지만 보람도 컸다. 내가 일본인으로 일본 사회에서 자라왔지만 한국을 통해 일본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생각의 폭도 넓어졌다. 조국을 사랑한다는 게 반드시 자기 나라만 좋아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점도 항상 느끼고 있다. 물론 한국도 일본에 대해 너무도 오해와 편견이 크지 않은가 하고 느꼈고 그럴 때에는 마음이 아팠다. 어째서 그런 오해가 생기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또 한 번 일본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하나의 렌즈로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보는 습관이 배어 있다는 느낌이다. 이른바 복안()을 갖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대선배들을 포함해 아주 매력적인 한국 분들을 많이 만났다는 게 무엇보다 큰 수확이었다.

1995년 내놓은 전후 보수의 아시아관, 2007년 내놓은 화해와 내셔널리즘이라는 책은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과 아시아가 여러 문제에 대해 화해를 모색하면서도 이른바 망언이 나오거나 반일 감정이 높아지면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이유를 주로 분석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의 전쟁 책임자가 독일처럼 명확하게 처벌받지 않고 전후에 계속 살아남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건 일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일본 점령 정책이 중간에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국 북한 구소련 등 화해의 대상이 모두 공산화되면서 전후 공직에서 추방돼 있던 일본 보수 정치인들이 부활했다. 한국은 공산화되지 않았지만 이승만 정권에서 반일감정이 고조돼 화해가 어려웠다.

한일 관계에도 고비가 많았다.

전후 한일관계는 크게 4개의 국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1기는 이승만 대통령 시대로 국교가 없었던 시기다. 2기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로 국교가 열렸지만 일본에서 보면 한국은 군사독재로 전후 가치관과는 맞지 않는 체제였다. 한국에서 보면 일본과 국교는 정상화했지만 일본이 사죄를 하지 않는 등 과거사에 대한 인식에 불만이 컸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함께 대항한다는 점에서 서로 눈을 감고 손을 잡았다. 3기는 한국의 민주화 이후 시기다. 일본으로서는 한국이 쉽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상대가 됐다. 동시에 일본의 역사인식도 점점 개선돼 1990년대 들어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담은 담화 발표가 이어졌다. 결정적이었던 게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담화였고 1998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 간에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 등 지금까지 억눌려 왔던 불만들이 분출했다.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 문제도 국교정상화 때 해결할 수 없어 사실상 뒤로 미뤘지만 민주화 이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사죄가 이어진 데 대한 반발이 있었다. 사죄를 했는데도 문제가 지속되는 데 대한 불만도 분출했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일본이 압도적으로 강했던 시대에는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점점 경제적으로 정체되는 가운데 한국은 힘이 커졌고 중국은 경제력은 물론이고 군사력도 커졌다. 여기에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일본은 과거의 여유를 잃게 됐다. 이로 인해 최근 갈등의 골이 깊어졌는데 이를 4기로 볼 수 있다. 한일관계가 매우 좋아진 가운데 문제가 분출했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정치가 좀 대립해도 국민이 증오하며 싸우는 시대는 아니다. 그 점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한다.

한일 관계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나는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고 본다. 다만 일본의 아베 신조()정권이 예컨대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를 수정해 한국을 다시 자극하면 서로 간의 내셔널리즘이 부닥쳐 모처럼 좋아진 한일관계가 다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걱정이다. 이런 부분을 정치인들이 잘 관리해나가지 않고 자국의 내셔널리즘에만 영합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민주화된 한국도, 정치가 약화된 일본도 요즘 시대에는 아무래도 포퓰리즘에 휩쓸리기 쉽다. 하지만 민주적이면서도 강한 리더십을 갖춘 정치인이 식견을 갖고 있다면 위기관리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며 거기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질서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의 역할에 대한 생각은.

아시아는 유럽처럼 하나로 정리될 상황이 아니어서 미국의 존재는 계속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국을 포위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본다. 물론 중국의 움직임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경계해 일미한 간의 군사동맹을 너무 부각하면 이번에는 중국이 경계하게 돼 당연히 군비 경쟁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 문제가 있지만 이를 너무 크게 보고 대응하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또 아시아에는 아시아의 가치관과 전통, 역사가 있다. 미국의 존재가 필요하지만 특히 일중한 간에는 한자문화와 유교, 불교 등 공통점이 많으므로 대만과 장래 북한까지 넣어 동아시아에 하나의 문화적 연대, 문화권을 만든다면 지역의 번영과 평화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동안 한일 양국에서 칼럼을 써오면서 격려와 함께 공격도 많이 받았다.

신문은 민족과 국가를 소중히 하면서 성장해 온 역사가 있고, 특히 식민지 시대를 겪은 한국 신문은 더욱 그렇다. 다만 역사의 교훈에서 볼 때 요즘 같은 시대에 저널리즘이 내셔널리즘에 지배당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언론은 과거 일-러전쟁 때부터 내셔널리즘을 선동하다 국민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은 아픈 경험이 있다. 가급적 일국의 내셔널리즘에서 조금 떨어져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마음을 모질게 먹고 다케시마 문제는 일본이 생각하는 방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썼다.(그는 2005년 한국의 독도 영유를 인정하되 섬 이름을 우정의 섬으로 하자는 몽상을 밝힌 칼럼을 아사히신문에 게재했다.) 이 칼럼으로 지금도 일본 우익들에게 공격받고 있지만 일본 내에서 응원하는 사람도 많다. 따라서 동아일보에 동경소고를 쓸 때도 이번에는 한국의 내셔널리즘을 조금 상대화해 본다는 기분으로 쓰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부터 기본적으로 자유인이다. 아직 정식으로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잊어버린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한동안 한국에서 한 번 더 유학할까 생각 중이다.



배극인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