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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개헌 필요성 충분해도 추진엔 신중해야

[사설] 개헌 필요성 충분해도 추진엔 신중해야

Posted October. 14, 2010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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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여권 핵심 인사들을 만나 내가 해보니 대통령에게 권력이 너무 집중돼 있다면서 개헌 추진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는 책임총리제가 있지만 총리 임명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면서 외교안보국방 등 외치()와 내정()을 분리해 대통령과 부통령이 따로 맡는 정부통령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산물로 탄생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을 비롯해 임기, 단임제 등 권력구조가 무리하게 설계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너무 권력이 집중되다보니 권력이 바뀌면 이전 정부의 성과가 평가절하 되기도 쉽다는 말도 했다. 우리 정치권과 사회의 지나친 갈등과 대립도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는 문제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이 2년 반이 넘는 국정운영 경험자로서 피력한 것이니 그 무게감과 공감도가 남다르긴 하다.

그러나 현행 헌법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과 개헌 추진은 별개다. 정치는 적절한 때가 있고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집권 후반기로 접어든 지금은 개헌의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국가안보와 경제 문제 등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집중적으로 해결하고 대비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국가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좌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형편에 개헌 논의를 하자는 게 과연 옳은 판단인가.

개헌은 정치권과 국민의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다. 야권은 차치하고 여권 내에서조차 계파간의 생각과 이해관계가 달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칫 시간과 국력만 낭비한 세종시 논란 재판()이 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이 비공식적으로 여권에 개헌 추진을 압박한 것이나, 여당이 개헌특위 구성과 민주당이 요구하는 4대강 검증특위 구성 등 4개 사안과 맞바꾸는 뒷거래를 시도한 것은 옳지 않다.

개헌 없이도 당장 대통령이 총리와 각 부처 장관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권력집중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가 여당의 일에 간섭하고 각 부처 국장급 인사에까지 간여하는 인사권 집중 관행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개헌은 차기 대권 주자들의 공약을 통해 국민의 판단을 받도록 하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