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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과잉으로 생산성 상실 불임 학문으로

Posted September. 19, 2006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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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당면 문제와 대책

본보는 8월 중순부터 전국 인문사회과학 교수를 대상으로 인문사회학의 위기를 진단하는 e메일 설문조사를 했다. 대상은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의 학술연구조성사업을 심사평가하는 전국 대학의 중견학자로 구성된 프로그램관리자(PM) 중 인문학과 사회과학 담당자 74명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인문사회과학 전공교수 257명이었다. 이 중에서 64명의 교수가 답장을 보내 왔다.

이들은 한국 인문사회학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으로 국내 우수학자를 육성 못하는 교육 시스템(21.5.%)을 꼽았다. 해외이론 수입과 표절 등 학문적 후진성(18.1%) 단기적 연구 성과를 강조하는 평가시스템(16.5%) 시장논리의 학문공동체 지배현상(9.1%) 이념을 앞세우거나 끼리끼리 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학문공동체의 분열(8.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또 현재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조치로 대학원생에 대한 국가 지원 확대 및 연구인건비 지급의 투명화(16.9%)가 꼽혔다. 자생적 이론의 개발(16.0%) 국내학생들이 해외유학생과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교육제도의 개혁(10.6%) 학진 등재지의 등급화를 통한 학자들에 대한 평가의 질적 차별화(10.6%) 번역과 주석을 학위논문으로 인정하는 논문개혁(9.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연구, 교육, 평가의 3박자 위기

이번 조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연구, 교육, 평가라는 우리 학계 3가지 핵심 역할에 대해 고루 비판이 쏟아졌다는 점이다. 학문의 후진성과 폐쇄성을 지적한 항목을 연구의 문제점(26.4%), 우수두뇌의 해외유출과 교육시스템 문제를 교육의 문제점(21.5%), 공정한 평가시스템 부족과 단기성과주의를 비판한 항목을 평가의 문제점(22.3%)으로 분류했을 때 그 비율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인문사회학계의 위기가 지엽적이 아니라 총체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항목 선정의 이유를 기술해 달라는 주관식 문항에서 연구 분야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답변이 많았다. 여기에는 학문의 식민지화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졌다. 한 학자는 현재 인문사회과학의 위기는 광복이후 외국, 특히 미국 이론의 편식과 민주화 욕구에 따른 급진적 사회과학의 도입으로 과잉 이념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고질적 패거리 문화의 해악

우리학계의 고질적인 패거리 문화에 대한 질타도 만만치 않았다. 이념과 끼리끼리 문화로 인한 학문공동체의 분열과 출신학교와 스승에 따른 학내정치의 과잉 등 패거리 문화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비율이 15.9%에 이른다.

한 교수는 끼리끼리 문화의 단면인 인용이 인용을 낳는 현상은 어떤 논제에 대해 일단 회의와 부정으로 시작해야할 인문사회연구의 기본 속성을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수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폐쇄적 학문문화가 한국적 특수성만 강조함으로써 세계적 보편성을 갖춘 이론 창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패거리문화가 낳은 배타성이 한편으로 서구이론을 추종하는 후진성으로, 다른 한편에서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폐쇄성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인문학의 위기를 증폭시켰다는 지적이다. 이는 특히 서울대 출신의 학문공동체 지배현상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서울대를 포함한 국공립대의 폐지(7.9%)를 최우선의 위기 타개안으로 제시하는 응답자도 상당수였다.

인문학 위기, 외생변수와 내생변수

최근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은 인문학 선언을 발표하면서 그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지적했다. 첫째는 시장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무차별적 맹신, 이로 인한 대학의 상업화라는 외생적 요소였고, 둘째는 인문학자들이 이에 대응해 인문학의 체질개선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이었다.

그러나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시장논리 지배현상과 단기 연구 성과 우선평가라는 외부적 요소를 비판하는 목소리(21.4%)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면 연구역량의 부족과 패거리문화 등 내부적 문제점(42.3%)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 뚜렷했다.



권재현 유성운 confetti@donga.com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