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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해산물 잡으려다 사람 잡는다…갯벌 해루질, 5년간 38명 사망-실종

한밤 해산물 잡으려다 사람 잡는다…갯벌 해루질, 5년간 38명 사망-실종

Posted September. 17, 2025 07:42,   

Updated September. 17, 2025 07:42

한밤 해산물 잡으려다 사람 잡는다…갯벌 해루질, 5년간 38명 사망-실종

〈5판용〉 지난달 8일 충남 당진에서 “해루질하러 간다”며 집을 나선 50대 남성이 실종됐다가 이틀 만에 숨진 채 바다에서 발견됐다. 5월에는 전북 부안에서 해루질하던 여성 2명이 물에 빠져 1명이 숨졌다.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소속 고(故) 이재석 경사(34)가 갯벌에 고립된 중국 국적 남성을 구하려다 순직하면서 해루질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최근 5년간 해루질 중 갯벌에 고립돼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은 38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최근 4년여 간 갯벌 고립 사고 288건

이 경사가 이달 11일 새벽 홀로 갯벌로 출동한 건 해루질을 하다 고립된 70대 중국 국적 남성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남성은 조개껍질에 발을 심하게 베여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경사는 자신의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장갑까지 벗어 발에 씌운 뒤 탈출을 시도했지만, 거센 물살에 휩쓸려 순직했다. 당시 갯벌은 밀물·썰물 차가 가장 큰 ‘대조기’였고, 지자체는 야간 해루질 자제를 안내하고 있었다.

해루질은 갯벌에서 조개, 낙지, 게 등 해산물을 캐거나 잡는 행위다. 특히 조개와 해산물의 활동이 밤에 활발해져 ‘야간 해루질’에 나서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물때와 조석(潮汐)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들어가면 위험이 급격히 커진다는 점이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갯벌 지형 특성상 빠져나올 길이 한정돼 있고, 시야도 어두워 방향을 잃기 쉽다. 영흥도는 시민들이 해루질을 하기 위해 주로 찾는 곳으로, 사고 발생 전날인 10일 밤에도 200명 이상의 시민이 갯벌에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밀물의 속도는 시속 7∼15㎞로, 성인이 지상에서 빠르게 걷는 속도와 맞먹는다. 발이 갯벌에 빠져 이동이 늦어지면 건장한 성인도 금세 휩쓸릴 수 있다.

2021년부터 지난달까지 전국에서 갯벌 고립 사고는 총 288건 발생했고, 이 중 38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2021년 83건, 2023년 67건 등 매년 두 자릿수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해경이 구조한 시민은 430명에 달한다.

해경은 인천시 등 지자체와 함께 드론으로 갯벌을 순찰하고, 위험 구간에 경고 방송을 송출하는 등 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인파에 비해 인력과 장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갯벌은 면적이 넓고 시야가 트이지 않은 곳이 많아 실시간 모니터링에도 한계가 있다.올 5월 국회에는 지자체가 야간 해루질 시간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수산자원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박건태 한국해양안전협회장은 “해루질은 단순 취미로 생각하기 쉽지만 위험성이 큰 만큼 안전 장비 착용을 의무화하고, 시간·구역 제한과 드론 순찰 확대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부실대응·은폐’ 의혹 해경서장 등 대기발령

해양경찰청은 이 경사 순직과 관련해 2인 1조 출동 규정 위반, 사건 함구 지시 등 의혹이 제기된 인천해경서장·영흥파출소장·영흥파출소 팀장 등 3명을 대기발령했다.

특히 영흥파출소 근무일지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경사의 동료 4명이 기자회견에서 “오후 9시부터 오전 3시까지 6시간을 쉬었다”고 밝힌 것과 달리 근무일지에는 6명이 3시간씩 교대로 휴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파출소 운영 규칙상 야간 휴게 시간은 3시간 이내로 제한된다.

해경은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꾸린 진상조사단 운영을 중단하고, 독립적 조사 방안을 새로 마련 중이다. 이는 “외부 기관에서 엄정히 조사하라”는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른 조치다. 해경 관계자는 “방향이 정해지는 대로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해경 내부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함구 지시’를 폭로한 이 경사 동료 4명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족 측은 “기자회견은 해경청장의 허락을 받은 것”이라며 자제를 요청했다. 김용진 해경청장은 전날 사고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인천=공승배기자 ks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