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 시간) 한국을 콕 집어 “(주한미군) 방위비를 거의 내지 않는다. 그들(한국)은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하루 전 한국과 일본에 보내는 ‘관세 서한’을 가장 먼저 공개한 데 이어 이날은 사실상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한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가 시작되는 다음 달 1일 전까지 치열한 통상 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문제를 노골적으로 거론한 건 결국 통상과 주한미군 방위비 및 국방비 증액 등 안보 의제를 묶어 ‘패키지 딜’로 협상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 중 미국의 무역적자와 불공정한 무역협정, 관세 부과 필요성을 설명하던 중 갑자기 “우리는 한국을 재건했고 그곳에 (미군이) 계속 주둔했다”며 “그들은 매우 적은 금액을 (주한미군 주둔비로) 지급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어 “(집권 1기 때) 한국에 ‘연 100억 달러(약 13조7000억 원)를 내야 한다고 했고, 그들은 30억 달러(인상)에 동의했지만 조작된 선거 때문에 이를 논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해 조 바이든 당시 행정부와 내년 방위비 분담금으로 1조5192억 원을 내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이보다 약 9배 많은 방위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무역적자와 불공정 협정을 언급하며 한국 이야기를 꺼낸 것을 두고 미국이 한국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2만8500여 명인 주한미군 병력을 두 배에 가까운 4만5000명으로 부풀리며 “엄청난 돈이 그들에게 들어가고 있고, 우리에겐 엄청난 손해”라며 “이 부분에 대해 정중하게 논의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 한미 간 방위비 문제를 이미 논의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조만간 한국에 국방비 증액도 노골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달 미 국방부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맹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 한국의 국방예산은 61조2469억 원으로 GDP의 2.32% 수준이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대미(對美) 무역 협상과 안보 의제가 분리하기 힘든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