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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겁게 판정으로 끝난 '세기의 복싱 격돌'

싱겁게 판정으로 끝난 '세기의 복싱 격돌'

Posted May. 04, 2015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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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던 사각의 링에는 허무함마저 감돌았다. 세기의 대결을 손꼽아 기다려온 복싱 팬들은 맥이 풀렸다. 2억5000만 달러의 천문학적인 대전료치고는 어이없는 졸전이었다. 국내 중계진도 하이라이트로 편집할 만한 펀치가 없는 것 같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3일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호텔 아레나에서 열린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키아오(37필리핀)의 WBCWBAWBO 웰터급 통합타이틀전. 메이웨더는 파키아오에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118-110, 116-112, 116-112)을 거뒀다. 메이웨더는 48전 전승(26KO) 행진을 이어가며 로키 마르시아노가 보유한 49전 전승 기록에 1승 차로 다가섰다. 파키아오는 57승(38KO) 2무 6패를 기록했다.

초반 KO를 노리고 적극적인 공세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파키아오는 몸을 사렸다. 4라운드에서 왼손 스트레이트를 메이웨더의 안면에 꽂은 뒤 세차게 몰아붙였으나 순간 스스로 뒤로 물러났다. 이후 메이웨더의 빠른 발을 잡지 못해 왼손 펀치는 번번이 허공을 갈랐다. 10라운드 이후에도 모험을 걸지 못했다. 파키아오의 트레이너 프레디 로치는 경기 전 메이웨더가 예상외로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다며 메이웨더를 싸움에 끌어들이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메이웨더가 자신의 스타일대로 아웃복싱을 펼치면서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메이웨더도 승리하긴 했지만 노골적인 수비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보여준 건 어깨를 흔들며 펀치를 막는 숄더롤과 간간이 득점 펀치로 적중시킨 오른손 스트레이트다. AP통신은 메이웨더가 경기 내내 무게 중심을 뒤로 두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고 지적했다. 12라운드 막판에는 승리를 장담한 듯 오른손을 치켜 올리자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다. 파키아오가 판정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할 만큼 깔끔하지 못한 승리였다.

캐나다의 CBC스포츠는 파키아오는 평소 600700회 펀치를 날리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429회밖에 날리지 못했다며 파키아오 역시 졸전에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전 헤비급 통합챔피언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경기 후 자신의 트위터에 5년을 기다렸는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메이웨더는 무기력한 경기에도 1억5000만 달러(약 1611억 원)의 대전료를 챙겼다. 파키아오는 1억 달러(약 1074억 원)를 받았다. 메이웨더는 세계권투평의회(WBC)에서 100만 달러(약 10억7000만 원)를 들여 에메랄드와 순금으로 특별히 제작한 통합타이틀 챔피언 벨트까지 어깨에 걸었다. AP통신은 메이웨더가 435회의 펀치를 시도했다고 언급했다. 펀치 1회당 3억7000만 원가량을 받은 셈이다.

세기의 대결에서 패자가 된 파키아오의 고국 필리핀은 침통함에 빠졌다. 인구 1억7000만여 명 대부분이 TV로 경기를 지켜볼 것으로 예상돼 전력 수급 걱정까지 했던 필리핀의 현지 언론들은 패배 소식만을 간단히 전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