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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폐단 많은 총장직선제를 은행에 이식하자는 건가

[사설] 폐단 많은 총장직선제를 은행에 이식하자는 건가

Posted July. 22, 201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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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그룹은 국민은행 직원 2만600여 명 중에서 선별한 1300여 명에게 행장 후보 적임자가 누군지를 묻는 설문서를 우편으로 보냈다. 어제까지 회수된 설문지를 취합해 행장 후보 12명 가운데 13위를 최종 후보군으로 선정한 뒤 이사회 면접을 거쳐 행장을 결정할 계획이다.

은행 외부 출신이어서 조직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어윤대 회장이 직원들의 의견을 파악하려는 순수한 뜻에서 이런 방식을 택했다 하더라도 인기투표 성격의 행장 후보 설문조사는 적잖은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지난날 국민은행, 주택은행, 장기신용은행이 합쳐 오늘의 국민은행이 된 뒤 잠복해 있던 출신 은행별 갈등과 반목이 이번 행장 후보 인기투표를 계기로 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은행 사람들은 지난 주말 출신 은행별로, 또는 출신 상고와 출신 대학별로 갈려 자기 쪽 연고자를 행장으로 만들기 위해 부산했다는 소식이다. 이런 모습은 금융 선진화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퇴영적 행태다. 설문조사부터 해서 행장 후보를 좁히는 방식은 금융기관까지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물들게 하고 인사에 대한 노조의 영향력을 키울 우려가 매우 높다.

어 회장은 대학의 총장 직선제의 변형 같은 폐단 많은 방식을 택함으로써 경영진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스스로 흔드는 결과마저 자초했다. 13위 중에서 고를 수 있다고 하지만 사원의 직접투표에서 1위를 한 사람을 배제한다면 또 다른 평지풍파()가 일어날 수 있다.

어 회장은 행장 선임 이후 인사 때마다 노조의 의향을 물어보고 나서 인사발령을 낼 것인가. 그렇게 선임된 행장이 과연 소신 있게 은행을 경영해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국민은행은 직원 수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져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구조조정을 주도해야할 지주회사 회장이 행장 선임부터 노조와 직원들의 눈치를 본다면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어 회장은 고려대 총장 시절 고려대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부적격()투표라는 일종의 교수 인기투표에서 탈락해 연임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총장 직선제의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가 대학에서 실패한 제도를 왜 은행에 이식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가 국민은행장이 되느냐를 떠나 직선제 방식으로 행장을 선임한 데 따른 후유증 해소가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됐다. 이런 제도가 다른 금융기관으로 확산돼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