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차 오일쇼크의 충격이 세계를 덮친 지 1년여 뒤인 1975년 초에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은 중동 진출을 선언했다. 지금 세계의 돈 줄기는 석유 공급원인 중동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중동은 세계 경제불황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불황을 타개하는 해답도 함께 가지고 있는 지역입니다. 우리가 중동으로 가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 회장은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현대가 국내 최고 기업으로 부상한 것도 중동 진출이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는 당시 중동 붐의 상징이다. 1977년 6월 이란의 테헤란 시장의 서울 방문을 기념해 당시 삼릉로를 테헤란로로 개명한 것이다. 도로 항만 등 건설 진출로 시작된 중동 붐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시들해졌다. 국제 유가의 하락, 중국 동남아 같은 신흥시장의 등장, 걸프전 발발 등으로 중동은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고()유가 시대가 다시 찾아오고 중동 국가들이 연간 수천억 달러의 오일머니를 손에 쥐면서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이 재개됐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중동 지역의 전체 건설 계약액 가운데 4분의 1인 360억 달러(약 44조 원) 상당을 한국 기업이 따냈다고 보도했다. 2003년 수주액 23억 달러의 15배를 웃도는 규모다. 그동안 한국에 대해 위기를 과장하고 비판적 보도를 많이 했던 이 신문은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면서 한국의 성공을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한국이 1970년대에 이어 제2 중동 붐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1차 중동 붐의 기수()였던 현대건설의 주인 찾기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외환은행은 이달 초 매각 주간사회사를 선정하는 등 현대건설 매각 작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의 인수전은 현대그룹, 현대중공업,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등 범()현대가의 경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침 제2 중동 붐이 일어 현대건설의 가치도 높아질지 궁금하다. 이번에는 누가 인수하든 현대건설이 제2 중동 붐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해줄지도 관심거리다.
박 영 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