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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물, 세계 축구팬 가슴엔 강슛이었네

그의 눈물, 세계 축구팬 가슴엔 강슛이었네

Posted June. 17, 201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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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여왕 김연아는 2월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연기를 펼쳤다. 프리스케이팅을 마친 그녀는 벅찬 가슴을 누르며 펑펑 울었다. 이를 본 많은 국민이 함께 울었다.

16일 또 한 명의 스포츠 스타가 눈물을 보였다. 북한 축구대표팀 스트라이커 정대세(26가와사키)는 브라질과의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뛰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 그는 진작부터 눈물을 가득 머금고 경기장에 들어오더니 국가가 연주될 때는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세계인의 시선이 그곳에 멈췄음은 물론이다.

정대세는 한국 제약회사의 TV CF에 출연할 정도로 이미 한국인에게 친숙하다. 그가 북한 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날 최고의 화제는 정대세의 눈물이었다.

16일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 첫 화면을 장식한 것도 그의 눈물이었다. 사실 북한-브라질 경기는 시작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FIFA 랭킹 1위 브라질과 이번 월드컵 출전 32개국 중 최하위 북한(105위)의 맞대결인 데다 은둔의 팀 북한의 첫 경기였기 때문이다. 경기는 브라질의 2-1 승리로 끝났지만 관심은 온통 북한에 집중됐다.

북한은 카를루스 둥가 브라질 대표팀 감독이 공간을 내주지 않는 압박 수비는 완벽에 가까웠다고 평할 정도로 경기 내내 브라질을 괴롭혔다. 유로스포트, 골닷컴 등 해외 매체들은 브라질보다 북한 선수들에게 더 높은 평점을 매겼다. 유로스포트는 경기 최우수선수에 해당하는 맨 오브 더 매치에 브라질 선수가 아닌 북한의 정대세를 선정했다.

정대세는 이날 단연 돋보였다. 독일 기자는 정대세 같은 체격과 파워풀한 경기 운영은 독일 분데스리가에 잘 맞는다. 월드컵 후 이적 제의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평했다. 정대세는 이날 보여준 눈물과 공격력이 아니더라도 스타로서 자질을 두루 갖췄다.

그는 경기 후 브라질 기자들과 유창한 포르투갈어로 인터뷰를 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프로 무대에서 활약 중인 그는 영어 구사 능력도 뛰어나다. 한국어까지 4개 국어를 하는 셈이다.

그는 외부에 나서는 것도 즐긴다. 7일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1-3 패배)을 마친 뒤 김정훈 북한 감독을 비롯해 선수 대부분은 한국 기자들의 질문을 피해 서둘러 경기장을 떠났다. 하지만 정대세는 한국의 빠른 공격수들이 일대일 패스로 공략하면 나이지리아 수비진을 쉽게 뚫을 수 있을 것이라며 공략법을 상세히 조언했다. 자신의 일본어 블로그에는 월드컵 기간 중 발생한 뒷이야기들을 올리며 신세대 스타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정대세가 주목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그의 이력 때문이다. 재일교포 3세로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인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 국적자다. 그의 어머니는 북한 국적이지만 누나와 형은 모두 한국 국적이다. 그의 형 정이세는 한국의 실업팀 충주 험멜의 골키퍼로 뛰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총련계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레 나의 조국은 북한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는 축구를 시작하면서부터 북한 대표의 꿈을 키웠지만 자신의 국적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아 북한 대표로 뛰려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되지만 한국 정부가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포기 신청도 불가능했다. 그는 FIFA에 자신의 출생 배경과 남북한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자필청원서를 보냈고 FIFA는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그는 2007년 7월 북한 대표가 됐다.

정대세는 브라질과의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에 누워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이기지 못하고 골을 넣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는 경기 전 흘린 눈물에 대해서는 월드컵에 나와 세계 최강 팀과 맞붙게 된 게 좋아서 그랬다고 답했다. 일본에서 자란 한국 국적의 북한 축구대표 정대세.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게 스타라면 그는 분명 스타다. 한국인들에겐 남다를 수밖에 없는 그의 행보는 앞으로 더욱 관심거리다.



한우신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