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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이슬람 불신의 골에 다리 놓겠다

Posted June. 05, 200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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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이집트 카이로대 대강당. 아침부터 모여든 900여 명의 내외신 기자와 학생들 사이에 기대가 섞인 긴장감이 흘렀다. 곧 진행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 담게 될 대()아랍권 메시지의 의미와 비중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날 연설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첫 중동 순방에서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 그는 이 자리에서 911테러 이후 악화된 미국과 이슬람권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상호 존중과 협력을 모색하자고 촉구할 예정이다. 그의 호소가 미국을 적으로 인식해온 이슬람권과의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우리는 적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같은 희망과 미래의 꿈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할 것이다라고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은 여러분과 과거와는 다른 관계를 맺기 원한다며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해온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예정이다. 심화된 불신의 틈을 메우기 위해 미국이 먼저 다리를 놓겠다는 의지도 밝힌다.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아랍인 인권 문제, 이스라엘-아랍권 평화 협상,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해가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이날 연설 내용은 CNN방송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13개 언어로 번역된 뒤 페이스북과 구글 등 웹사이트를 통해서도 200여 국에 서비스된다. 15억 명에 이르는 무슬림들이 이번 연설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백악관의 특별 조치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한 번의 연설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지나친 기대감을 경계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외신들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향후 미국의 중동 외교정책을 염두에 두고 이번 연설에 크게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연설문 작성자인 벤 로즈 씨는 대통령이 지난주 내내 연설문 초안을 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수정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연설을 향후 중동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결정적 계기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 악화돼온 상호 불신과 편견, 증오의 문제를 먼저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3일 첫 순방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슬람 문명의 발상지에 직접 와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슬람을 배울 자세가 돼 있음을 강조했다.

역사를 바꾸는 명연설 될까

역대 미 대통령들의 외국 방문 연설은 적으로 인식되던 국가의 시민을 감동시키고 국면을 전환시키는 외교적 힘을 발휘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독일 베를린 연설이다.

냉전으로 미국과 동구권 관계가 얼어붙었던 시기에 그는 공산주의와 자유세계 사이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이슈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면 베를린으로 오게 하자고 역설했다. 24년 뒤인 1987년 같은 곳을 방문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미스터(Mr.) 고르바초프, 자유화와 평화와 번영을 원한다면 이 문을 여시오. 이 장벽을 무너뜨리시오라며 냉전 종식을 촉구했다. 명연설로 기록된 그의 이날 외침 이후 2년여 만에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이정은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