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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핵복구하며 14조원 드는 10•4선언 지키라는 북

[사설] 핵복구하며 14조원 드는 10•4선언 지키라는 북

Posted September. 20, 200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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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2007년의 104 남북 정상선언을 이행하려면 14조3000여 억 원이 필요하다고 국회에 그제 보고했다. 회담의 적실성 여부에 대한 의문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합의 이행에 필요한 예산 규모를 한사코 밝히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남한 경제의 36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북에 서울시 예산(올해 19조원)과도 비교될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기로 했으니 이를 차마 국민에게 공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만료 4개월을 앞두고 쫓기듯 정상회담을 하더니 이처럼 황당한 부담을 남기고 떠난 뒤 유유자적()하고 있다.

104 선언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제적 타당성은 물론이고 당면 현안인 북핵 문제 해결이나 남북 화해에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따져보지도 않은 채 덜컥 합의부터 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맹목적 집착과, 국민이 허리가 휘든 말든 다음 정권이 손대지 못하도록 못질하겠다는 오기()의 산물이었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은 정상 간 합의사항이 너무 많다고 자랑까지 했다.

북한은 이 순간에도 104 선언의 이행을 집요하게 촉구하고 있지만 합의 가운데는 이미 사문화된 것이 많다. 북한은 상호존중 및 내정 불간섭 약속을 깨고 남한 정부 비방을 계속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남북응원단의 경의선 열차 이용도 북의 비협조로 무산됐다. 최근에는 남북 정상의 핵문제 해결 노력 약속을 어기고 영변의 핵시설 복구에 착수했다. 북은 정상선언의 이행을 촉구하기 전에 자신들이 저지른 약속 위반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104 선언은 남북관계 발전평화번영 선언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발표됐지만 결국은 남도 북도 책임지기 어려운 부도수표로 귀결되고 있다. 104 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북측 주장에 동조하던 국내의 친북 좌파세력은 14조에 달하는 명세서를 보고 뭐라고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계속 정상선언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북이 확실하게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104 선언 이행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