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 12일 1만8400원이던 대우건설의 주가는 7월 17일 1만850원까지 내려갔다. 한 달여 만에 무려 40% 이상이 빠진 것. 물론 모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공격적 기업 인수로 그룹의 재무 부담이 커졌다는 악재는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상한 소문들이 더 문제였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금호가 대우건설을 다른 회사에 재매각한다거나, 심지어 검찰에서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우리 회사를 내사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며 기업설명회(IR) 등을 통해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세력이 대우건설 주식을 공()매도한 세력이라고 의심했다. 해당 기업의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버는 공매도 세력들이 일부러 흉한 소문을 퍼뜨린다는 것. 이 관계자는 당국에 의뢰해 본 결과 루머의 진원지가 홍콩 등 해외인 것으로 추정됐다는 답변이 왔다며 물증이 있는 것도 아니라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도 최근 증시 불안기에 악성 루머의 공격을 받았다. 이 회사의 주가는 6월 한때 3만 원을 넘었지만 9월 1일 1만7200원까지 주저앉았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전환사채(CB)를 발행한다는 소식에 맞춰 회사가 자금난에 봉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공매도를 쳐놓고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약세장에 민감한 투자자들 자극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증권예탁결제원에서 주식을 빌려(대차거래)서 시장에 파는 투자기법. 예상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시장에서 매입해 되갚아 이익을 챙긴다.
이론적으로 대차거래는 가격 안정에 기여하며 증권의 유동성도 높여준다. 하지만 악성 투기세력이 루머를 퍼뜨리는 등 불법적인 가격 조작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선의의 개인 투자자들. 해당 기업도 이미지나 정상적인 기업 경영 활동도 망가진다.
과거에 주가조작 세력은 보통 주가를 끌어올리는 허위 정보를 유포하곤 했다. 대상 기업의 주식을 사들인 후 어느 기업을 인수한다더라 신약신제품을 개발한다는 소문을 내 주가가 폭등하면 시세 차익을 챙기고 떠났다. 지금은 반대다. 같은 거짓소문이라도 악소문은 만들어내기가 훨씬 쉽고 전파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주가 조작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최근 9월 위기설 등으로 투자자들이 잔뜩 민감해진 시기에 이런 개별 기업의 유동성 위기설은 자본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실제로 개인 투자자들은 루머에 대한 사실 확인도 되기 전에 이들 기업의 주식을 투매하다시피 하고 있다.
최근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렸던 K사 관계자는 기업 부도설의 경우 여의도 증권가에서 자주 쓰는 인터넷 메신저나 정보지 등을 타고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간다며 그러면 불과 몇 분 뒤에 너의 회사에 무슨 문제 있느냐는 전화가 줄을 잇는다고 말했다.
공매도 90% 외국인 투자가 추정
피해 기업이 늘어나자 금융감독원은 3일 특정 기업에 대한 음해성 루머를 유포하는 행위를 적발하는 시장 악성루머 합동 단속반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공매도 세력의 90%가 외국인 투자가들이고 10%가 국내 기관투자가들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4억5000만 주였던 대차거래 잔액은 이달 초 8억600만 주로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공교롭게도 최근 주가 급락의 아픔을 겪은 하이닉스, LG전자, 대우건설의 잔액이 유독 많이 늘었다.
공매도는 해외에서도 문제다. 미국 정부는 7월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등 최근 주가가 폭락한 일부 금융회사에 대한 허위 정보가 유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10여 개 금융기관의 주식에 대해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