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고려 말, 훗날 조선 태종이 된 이방원은 이런 시조를 읊으며 정몽주의 의중을 떠봤다.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해 고려조가 바람 앞의 촛불이던 때였다. 후세에 하여가()로 전하는 바로 그 노래다. 그러자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함승희 전 국회의원이 그제 하여가와 단심가를 읊조리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민주당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이 중도통합 민주당으로 합당한 바로 그날이다. 중도개혁통합신당 멤버들은 4년여 전 100년 정당을 만들겠다며 정치적 모태()인 민주당과 동료들을 배신하고 뛰쳐나간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국정 실패를 마치 일부 친노 세력의 책임인 양 떠넘기고 다시 민주당에 손 내미는 상황을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며 그냥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함 전 의원은 검사 출신이다. 1995년 권력형 비리 사건의 수사 비화를 모아 성역은 없다는 책을 내기도 했지만, 그는 당시 성역에 도전한 검사로 유명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그는 새천년민주당을 선택했다. 고향(강원도 양양)이 아니라 서울(노원갑)을 지역구로 배정받아 뒷말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만 철저히 수사했더라면 노태우 비자금 사건도 좀 더 일찍 밝혀낼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국회의원이 돼서도 조직폭력배라면 비분강개하던 검사의 초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탈당 성명서에서 정치적 입지가 불리해진다 싶으면 소속 정당이나 정파를 헌신짝 버리듯 하는 무리들이 위로는 대통령 후보, 국회의원, 도지사에서 아래로는 시군구 의원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에 득실대고 있다고 했다. 이 말에 가슴 뜨끔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미 신경이 마비돼 태연들 한 것 같다.
김 창 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