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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군사 분계선 넘었다 객실 환호성

Posted May. 18, 200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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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동안 잠자던 동해선의 철마()가 다시 깨어난 시간은 17일 오전 11시 27분. 북한 금강산역에서 시험운행에 나선 남행 열차는 뿌우우 하는 기적소리를 울리며 기지개를 켰다.

오랜 동면 탓인지 철마는 앞뒤로 덜컹거리기를 서너 차례 반복한 뒤에야 10km 정도의 속력으로 남측 제진역을 향해 서서히 움직일 수 있었다.

금강산 자락을 좌우로 굽이치며 달리는 사행() 철도인 탓에 동해선 열차는 시속 20km를 넘지 않는 속도를 유지했다. 그래도 곡선 철로를 달릴 때는 차체가 좌우로 기우는 느낌을 받았다.

열차에 탑승했던 한 철도 관계자는 북측으로서는 최신 기종의 차를 내놓았겠지만 기술력의 격차가 우리와는 30년 정도 나는 것 같다며 비둘기호 수준이라고 말했다.

새마을호 기준으로 1량에 64석인 남측 객차와 달리 북측 열차엔 106명이 앉을 수 있다. 대체로 우측 좌석에 3인, 좌측 좌석에 2인이 앉을 수 있어 한 줄에 5명이 탑승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남측 객차에 비해 훨씬 좁았다.

객석은 서로 마주 보도록 고정돼 있었다. 좌석을 뒤로 젖힐 수도 없었다. 시트와 등받이가 거의 수직을 이루고 있지만 아이보리색의 비닐 시트는 생각보다 푹신했다.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에 남측 기관사로 참여했던 동해기관차승무사무소 김동률 기관사는 1968년식 기관차였지만 관리를 굉장히 잘해서 기관실과 운전실 모두 깨끗했다며 남측 엔진은 2행정 디젤기관인 데 비해 북측은 4행정 디젤기관이라 훨씬 조용했다고 설명했다.

열차 뒤편으로 멀어지는 금강산의 모습과 논에 나와 일을 하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보면서 상념에 잠길 무렵 열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북측 구간의 마지막 역인 감호역이었다.

낮 12시경 세관원 4명과 역무원 2명이 칸마다 탑승했다. 그중 한 명이 첫 열차 운행의 승객이 된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제부터 통관 및 세관 검사를 실시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검사를 시작했다.

사진이 첨부된 명단과 실제 탑승객을 대조해 확인한 뒤 남측 인원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내용을 철저히 검사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낮 12시 15분. 예정된 군사분계선 통과까지 불과 5분이 남았다.

기차는 다시 우렁찬 기적소리를 내며 속도를 냈다. 이번엔 시속 4050km는 되는 느낌이었다. 흔들림이 심해졌지만 좌석 옆에 놓인 음료수대에 올려진 병이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기적소리가 울릴 때마다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곧 군사분계선을 넘는다는 말이 나왔고 승객들의 시선이 모두 창밖으로 쏠렸다. 낮 12시 21분 하얀 말뚝이 박힌 군사분계선을 통과했다. 객차 내에선 박수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터졌다.

이날 반세기 만의 군사분계선 통과 임무를 완수한 열차는 북한에선 특별한 열차였다. 기관차 옆면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몸소 오르셨던 차. 1968년 8월 9일이라는 글귀와 영예상 26호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초록색과 하늘색으로 칠해진 이 객차는 김종태 전기기관차 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해선=공동취재단



하태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