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한민족의 영산()이다. 그러나 한중 접경의 이 산을 중국은 창바이산()이라고 부르면서 중국 것이라고 해 왔다. 그럴 때마다 육당() 최남선의 백두산 참관기가 떠오른다. 이마를 스치는 것은 백두산 바람이요, 목을 축이는 것은 백두산 샘물이요, 갈고 심고 거두고 다듬는 것은 백두산 흙이다. 이렇게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고 떼려 해도 떼 낼 수 없는 것이 백두산과 우리의 관계이다.
백두산정계비()라는 것이 있었다. 만주족 정권이라 할 청()의 강희제()가 백두산을 조상의 발상지라 하여 제사 지내게 한 것이 17세기 후반이다. 그 무렵부터 삼과 모피 같은 특산물을 둘러싸고 한중 민간인들의 분규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청은 조선을 압박하여 서쪽은 압록강으로, 동쪽은 토문()강으로 국경을 획정하는 경계비를 세웠다. 그런데 높이 2.25척의 이 비석을 일제가 없애 버렸다.
중국의 창바이산 띄우기가 재개된 지 오래다. 198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받고, 1986년에는 국가 자연보호구로 지정했다. 지난해에는 산 관할권을 옌볜() 자치구에서 지린() 성 직속으로 바꾸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한다는 목표로 내년에 신청서를 낼 계획이다. 창바이산 공항을 착공했고, 산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3개를 올해 착공할 예정이다. 곧 순환도로도 낼 것이라고 한다.
일련의 작업이 동북공정()과 이어져 있다. 창바이산을 티베트 대만의 명산 등과 더불어 중화 10대 명산으로 지정한 데서도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전략적 관심 지역의 산을 당당히 포함시킨 것은 중국의 주권 영역임을 천명한 것이다. 통일 한국 이후의 고구려 발해 역사에 관한 논란을 선제하려 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정작 백두산 주권을 지켜 내야 할 북한은 힘을 잃고 코너에 몰려 있다. 북한이 빨치산 밀영 자랑이나 하고, 정일봉을 치켜세우며 망해 가는 사이, 정작 백두산은 중국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김 충 식 논설위원 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