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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재력-가족관계 꼬치꼬치 따져

Posted August. 25, 2005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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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모(50전북 익산시 여산면) 씨는 요즘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다. 5월 중순 필리핀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필리핀 신부가 한국에 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씨는 재혼인 데다 농촌에서 살고 있어 마땅한 결혼 상대를 만나지 못해 어렵게 결정한 국제결혼이라며 혹시 결혼 자체가 취소되지 않을지 걱정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이 자국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결혼 절차를 강화하자 전 씨처럼 속을 끓이는 농촌 총각이 부쩍 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가정폭력 등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의 피해 사례가 알려지자 이 같은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은 모두 2만5000여 명. 특히 베트남과 필리핀 여성은 각각 2462명, 964명으로 4년 전에 비해 각각 20배, 2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론 외국인 신부 얻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정부는 최근 외국인과 결혼한 자국 여성은 반드시 외교부 산하 정부기관에서 문화적 차이 극복 방법, 가정 폭력을 당했을 경우 대처방법 등을 교육받도록 했다.

이 교육은 하루씩 모두 4일간 이뤄지지만 매번 별도로 교육을 신청해 순서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외국인과 결혼한 신부들이 교육을 모두 마치기 위해선 4, 5개월을 기다리기 일쑤다. 이 때문에 결혼한 뒤 일반적으로 한 달 동안 법적 절차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던 필리핀 신부들은 최근 4, 5개월 이상 출국을 기다리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올 3월 총리가 직접 나서 국제결혼 심사를 강화하도록 지시했다. 베트남은 과거 서류만으로 국제결혼을 허가했지만 총리의 지시 이후 인민위원회(한국의 구청에 해당)가 신랑과 신부를 인터뷰해 신랑의 재력, 가족관계, 자국 여성 부양 능력 등을 검증하고 있다.

7월 초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신부의 입국을 기다리고 있는 안모(45) 씨는 인민위원회에서 사전에 통역관을 통해 재산, 가족 관계를 확인하고도 인터뷰에서 마치 취조하듯이 이를 여러 차례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베트남이 요구한 서류만도 10여 건이 넘는 데다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으면 다시 서류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예정보다 2번이나 더 베트남을 방문해야 했다고 말했다.

베트남대사관 관계자는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들의 피해 사례들이 알려지자 총리가 직접 공문을 내려 국제결혼 심사를 강화했다며 특히 한국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에는 검증 작업을 더 철저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태는 자업자득의 성격이 강하다. 외국인 여성들이 한국에서 본 피해가 국제결혼을 준비하는 한국 남성들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국제결혼 정보업체 인터웨딩 이은태(44) 대표는 외국인 신부를 가정부로 잘못 생각하는 한국 남성도 있어 가정폭력 등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 남성에 대한 이미지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결혼한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라며 한국 남성의 인식이 우선 바뀌어야 하지만 정부도 인권과 국가 이미지 차원에서 외국 여성의 국내 적응과 보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