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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 영화가 사는 법?

Posted June. 09, 2005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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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큰 가족-330. 연애의 목적-260. 극장전-29. 녹색의자-8. 활-3.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처럼 보이는 이 숫자는 각 영화가 상영되는 전국 개봉관(스크린) 숫자다. 앞의 두 영화처럼 250300개 스크린에서 개봉돼 대규모 흥행을 노리는 와이드 릴리즈가 대세인 한국영화계에 단관(•소수관) 개봉의 바람이 조용히 불고 있다. 단관 개봉은 한 도시 한 개관 혹은 열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적은 극장에서 개봉하지만 상대적으로 상영기간은 길게 잡아 관객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한국 영화시장에서 저예산영화에 알맞은 대안적 마케팅 전략이라는 낙관적인 측면과 기반이 불안하다는 비관적인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낮은 마케팅 비용=올해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인 김기덕 감독의 활은 서울 부산 대전 각 1개관에서만 개봉했다. 영화의 총제작비는 10억원이지만 단관 개봉 덕에 마케팅 비용은 1700만 원이 전부였다. 극장전은 3억 원, 녹색의자는 2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썼다.

김기덕 감독은 활 이전 11편의 영화를 만들며 혹시나 하고 수억 원의 홍보비를 들여 70여 개 스크린에서 개봉했지만 결국 큰 손해를 봤다고 밝혔다.

녹색의자의 배급을 맡은 미로비전 김래영 팀장은 제한된 예산에서 가장 효율적인 배급방식을 찾다 보니 적절한 개봉 규모에서 길게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수입영화도 단관 개봉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이달 개봉하는 일본 이와이 온지 감독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등 4편을 서울 한 극장에서만 상영하는 것도 이 곳을 정거장 삼아 이와이 온지 감독의 국내 팬을 지속적으로 끌어 모으겠다는 전략이다.

해외 공략과 병행한다=단관 개봉 영화들의 공통점은 일단 해외에서 인정을 받고 투자나 배급도 해외에 일부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장전은 프랑스 영화사 MK2가 제작비 8억6000만 원 중 2억 원을 투자했고 유럽과 북미 배급을 맡기로 했다. 활은 일본투자사인 해피넷이 제작비의 50%를 충당했고, 이미 해외 판매로 70만 달러(약 7억 원)를 확보했다. 비디오와 DVD 등 부가판권을 감안하면 수익도 낼 수 있다. 녹색의자도 선댄스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 먼저 선보여 호평을 받은 뒤 국내 개봉하는 경로를 밟았다.

단관 개봉의 전망=활은 지난달 12일 개봉해 딱 일주일간 상영에 1643명이 보는 데 그쳤다. 결정적 패인은 상영기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영화계에서는 단관 개봉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관객 수에 관계없이 최소 3주 이상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극장과 이런 저예산 영화의 가치를 알아 꾸준히 찾는 관객층의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지난해부터 미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몇 개 극장에서 6개월여 상영되면서 32만여 명을 끌어 모은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그러나 현재 실정에서는 3주 개봉 조건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다. 멀티플렉스라 해도 스타워즈 에피소드3 같은 대박 영화를 24개 스크린에 걸고 다른 국내외 영화를 상영하고 나면 스크린이 다 차기 때문.

영화 전문 마케팅홍보대행사인 올댓시네마의 채윤희 대표는 미국 저예산 영화 쏘우가 적은 수의 극장에서 시작해 전미 흥행 1위까지 오른 것처럼 우리도 좋은 저예산 영화와 이를 꾸준히 상영하는 극장의 조화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민동용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