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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트로트 들고 온 오빠

Posted March. 10, 200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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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전영록(50)이 13년 만에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생일인 26일 서울 남대문 메사 팝콘홀에서 가요 톱10 콘서트 시리즈의 첫 주자로 무대에 서고 다음달에는 새 음반도 낸다.

가요 톱10 콘서트는 1980년대 KBS 가요순위 프로그램 가요 톱10에서 1위를 차지했던 가수들이 매달 한 명씩 무대에 서는 릴레이 공연. 최성수 김범룡 등이 12월까지 무대에 오른다.

전영록은 가요 톱10에서 애심 종이학 내 사랑 울보 저녁놀 등 연속 5주 1위를 해 골든컵을 받은 곡만 10곡이 넘는다. 그러나 전영록은 1992년 20집을 내고 가수 활동을 접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히트하고 랩 댄스 음악이 유행하자 그는 옛날 가수가 되어버렸다.

단 한 명의 팬이 와도 전 기쁩니다. 게스트, 이벤트도 필요 없어요. 제 노래를 한 곡이라도 더 해야죠.

그는 오랜만에 팬들을 만나지만 의외로 담담했다. 콘서트가 성공할까, 어떤 이벤트를 보여줄까 등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무대에 서서 팬들을 만나는 일 자체가 좋다는 것이다.

가수 활동을 쉬는 동안 그는 음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후배 가수들이 하는 리듬앤블루스나 소울 음악은 흉내 내기 같아요. 흑인의 감성을 담아내려 하기보다는 기교 부리기에 더 관심이 많죠. 힙합 음악도 무조건 손가락 내리 꽂는 동작부터 하더군요. 저는 쉬는 동안 음악공부도 하고 가요 장르 틈새 찾기에 바빴습니다.

그가 찾은 틈새는 포크 트로트다. 그는 다음달 13년 만에 발표할 새 음반에 통기타 반주에 맞춰 부른 포크 트로트 67곡을 수록할 계획이다.

1980년대 제가 했던 음악에는 감정이 안 들어갔어요. 노래 잘 부르는 척 흉내만 낸 것 같아요. 슬픈 노래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느낌만큼 슬프게 불러야 되는데. 이제야 조금 감정이입이 되는 듯해요.

지난달 9일 부친상을 당한 전영록은 아버지(배우 황해)를 잃은 슬픔이 이런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저는 아버지에게서 제대로 된 칭찬 한 번 듣지 못했어요. 데뷔 20주년 콘서트 때 우리 영록이가 이제 노래 좀 하는구나라고 하신 게 최고의 칭찬이었지요. 그렇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생전에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가 후회되네요.

전영록은 33년 동안 20장의 정규앨범을 포함해 총 38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또 작곡가로 활동하며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등 히트곡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데뷔 20주년과 30주년 때는 후배 가수들이 전영록 헌정음반을 만들어주었다.

데뷔 후 강산이 세 번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뿔테안경을 쓰고 청바지를 즐겨 입는 영록이 오빠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용필이 형이 1위이고 내가 늘 2위라고 하죠. 하지만 2위 가수는 늘 올라갈 곳이 있어 좋아요. 지금까지 제가 쉬지 않고 음악을 연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김범석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