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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할머니가 좋아

Posted January. 10, 200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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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노릇을 결혼에 비유한다면 할머니 노릇은 연애다. 영국의 페미니즘 작가이자 소설가인 에바 피지스 씨(73)의 말이다. 엄마 역할 제대로 하려면 수고는 수고대로 하면서도 걱정과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는다. 꼭 결혼생활 같다는 얘기다. 반면 할머니는 부담 없이 사랑만 쏟아 주면 된다. 손자가 공부를 못해도, 말썽 좀 피워도 할미 눈엔 예쁘게만 보인다. 마치 연애하듯이.

아이들 쪽에서 봐도 할머니는 왠지 만만하다. 한서대 한정란 교수가 서울의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노인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더니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에게 좀 더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더란다. 여성 노인에겐 현명하다 친절하다 참을성 있다 등 긍정적 답변을 한 반면 남성 노인에 대해서는 지루하다 비생산적이다 쇠약하다 등 부정적이었다는 거다. 우리 사회가 노인에게 기대하는 것이 자상하고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여성적인 특성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할아버지들이다. 막대한 유산을 물려주지는 못해도 손자들 용돈은 줄 수 있어야 권위를 잃지 않을 텐데 옛날 생각만 하고 호통이나 친다면 왕따 당할 판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평균수명은 자꾸 늘고 있다. 2002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남자 73.4세, 여자 80.4세다. 한국은 50년 내에 가장 늙은 국가가 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고도 나왔다. 2025년 벌어 자식들 공부시키고도 또 그 이상의 긴 세월을 수입 없이 살아야 한다.

나이 들수록 필요한 것이 건강과 돈과 인간관계다. 건강이야 스스로 지켜야 하지만 돈은 자식들에게 덜 투자하고 내 노후자금으로 떼어 놓는 것도 방법이다. 친구도 많을수록 좋지만 그게 어려우면 마누라라도 알뜰히 챙겨 둬야 이가 서 말 생기지 않는다. 늙어서도 일할 수 있다면 앞의 세 가지 문제는 절로 해결될 수 있다. 유럽서는 2006년 10월부터 나이차별금지법이 발효된다는데, 정 안되면 내가 나 스스로를 고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