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뚱뚱해도 엄마는 날 사랑해?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성원이가 전화로 불쑥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성원이는 6세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2년간 외국에 살면서 체중이 늘기 시작했다.
현재 키 130cm에 체중은 43kg. 성원이는 요즘 하루에도 서너 번씩 자기가 많이 뚱뚱한지 엄마에게 묻는다. 성원이 엄마는 속상하다. 최근 성원이가 학교 친구를 때리고 물건을 자꾸 빼앗는다는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아서만은 아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뚱뚱하다고 놀리며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는 성원이의 말에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경기 안양시에 사는 현수(13)는 학교에서 귀가하면 컴퓨터 게임, 만화책 보기, TV 시청으로 시간을 보낸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가는 학원도 가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자기를 뚱보라고 놀리며 싫어한다는 것이다.
현수 엄마가 살을 빼게 하려고 수영이나 헬스클럽을 보내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현수 엄마는 최근 학교의 건강검진에서 현수가 지방간이 있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약간 높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각한 어린이 비만=서울시학교보건원에 따르면 19791996년 서울에서 비만 판정을 받은 어린이는 남자는 6.4배(1979년 3.6%에서 1996년 23%), 여자 4.7배(1979년 3.3%에서 1996년 15.5%)로 증가했다.
뚱뚱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과식하며 기름기 많은 음식을 좋아하고 특히 저녁식사를 많이 한다. 또 밥 먹는 속도가 대체로 빠르다.
어린이 비만은 어른이 돼 비만이 될 확률이 60~80% 정도 높다. 체지방이 급속도로 증가할 뿐만 아니라 생활습관이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
199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1019세 소아 및 청소년에서 비만도가 높아질수록 같은 연령대의 정상체중 아이에 비해 고혈압은 6.3배, 고지혈증은 4.8배 정도로 높게 나타났다. 이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지방간 고지혈증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 발생 비율이 높아진다.
최근 미국에선 비만 아이가 정상적인 아이에 비해 성인에게 흔한 2형 당뇨병이 더 많이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비만이 주는 고통=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을까봐 걱정돼요. 뚱뚱하다고 놀려서 코피가 나게 때려줬어요. 뚱뚱한 사람은 게으른 사람인가요. 자신이 없어요.
문제는 비만은 현수나 성원이처럼 또 다른 정신적 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의 한 자료에 따르면 비만아의 90%가 체중을 줄이면 친구들이 덜 놀리고 덜 때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나타났다. 또 69%는 더 날씬해지면 친구가 많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비만한 아이는 정상체중 아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이 높고 신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경우가 많다.
뚱뚱한 아이들이 보이는 낮은 자신감은 부모나 선생님조차 비만을 부정적으로 보고 못마땅해 한다는 생각이 직간접적으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마찬가지. 체중은 조절가능한 문제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뚱뚱한 것을 게으름과 같은 천성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아이는 자신이 살찐 것 때문에 주위 사람으로부터 게으르거나 자기 조절을 못하는 아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무의식 속에 두려워한다. 바로 이 때문에 비만아의 우울증 위험이 높아지는 것.
따라서 부모는 비만한 자녀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느끼는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아이들 스스로가 뚱뚱하지 않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다르게 취급받는 느낌을 가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움말=한림대 가정의학과 박경희 교수,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송은주 교수, 나눔비만식사장애클리닉 허시영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