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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순망치한

Posted September. 13, 2003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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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 말엽 진나라가 괵나라와 우나라를 침공하고자 했다. 진나라는 먼저 우나라에 제안했다. 괵나라를 치러가는 길을 빌려주면 많은 재물을 주겠다. 그러자 우나라 중신 궁지기()가 왕 앞에 나서 이렇게 말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 있습니다. 괵나라가 망하면 우리도 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물에 눈이 먼 우나라 왕은 진나라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결국 우나라는 괵나라가 망한 후 진나라의 침략을 받았다. 순망치한()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된 내력이다.

순망치한은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종종 인용되곤 했다. 괵나라와 우나라의 예처럼 북한과 중국도 하나가 망하면 다른 하나가 온전치 못하게 된다는 뜻에서 이런 말을 썼을 것이다. 북한체제가 붕괴해 미국의 영향력이 북-중 국경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은 냉전시절의 중국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중국이 625전쟁 때 100만 대군으로 북한을 도운 것도, 90년대 이후 해마다 북한에 에너지와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북한이 중국에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입술과 이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사회주의 형제 국가 사이에 틈이 벌어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중 관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얼마 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미중 관계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 이래로 가장 좋다고 밝혔을 정도다. 중국은 경제성장 지속과 2008년 올림픽 성공을 위해서도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북-중 관계에 변화를 가져온 요인으로는 한중 관계의 비약적인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중국에 북한이 윗입술이라면 한국은 아랫입술이 됐다. 중국은 이제 윗입술이 없어도 이가 시리지 않게() 된 것일까.

냉전시절 국가간 관계를 좌지우지했던 이데올로기는 빛을 잃은 지 오래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개별 국가는 오로지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위시한 중국의 4세대 지도자들이 실용주의적이라는 평을 듣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중국에 점점 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있을 뿐이다. 90년대 이후 고난의 행군을 거친 북한이 아직도 이러한 현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북한이 진정 의지할 상대는 남한이다. 북한이 제멋대로 내세우는 민족공조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민족공조가 필요한 때다.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