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협곡. 산이 험하고 계곡이 깊어 도저히 도로를 내지 못한, 물살 센 강 상류의 깊은 계곡에 기자가 붙인 이름이다. 그 구간은 청량산 지나 태백을 향해 나란히 사이좋게 북상하던 도로(35번국도)와 강이 결별을 선언하고 제 갈 길로 접어드는 영동선 철도의 현동역(하류봉화군 소천면), 그리고 하늘도 세평, 꽃밭도 새평 의 오지 승부역사이의 16.5km(철로)다. 협곡은 자동차 탄 사람의 접근을 거부한 채 50년 가까이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온 오지. 이제부터 그 곳을 찾아가 낙동강 상류의 숨겨진 속살을 더듬어 본다.
협곡 통과 철도(영암선영주철암)의 완공은 전쟁 직후인 1955년 연말. 전 구간(87km)의 23%(20km)가 다리(55개)와 터널(33개)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얼마나 난공사였는지 알 수 있다. 협곡 구간(남쪽으로부터 현동역분천역양원 임시 승강장승부 역)은 철도를 따르는 도로가 아직도 없다. 철로는 물가의 절벽을 절개해 겨우 확보한 공간에 놓여 있고 때문에 협곡 역은 모두 강가에 있다. 거기서도 최고 오지는 간이역에조차 들지 못해 역사조차도 없는 임시 승강장 양원. 36번 국도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포장 산길(6km)이 있기는 해도 한겨울에는 통행이 두절돼 한동안 고립된다. 한겨울에 주민(13가구)의 절반이 외지로 나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때 양원의 주민을 외부 세계와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가 철도다. 하루 네 번 정차하는 통일호가 이곳 주민의 생명 줄이다.
오지의 특성은 인간 간섭이 적다는 것. 양원에서 기자는 해질 녘 박쥐가 나는 모습과 한밤중 산토끼가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보았다. 한낮 길에서는 뱀도 보았다. 철길 아래 강변은 흙길과 수면의 높이가 같다. 철로 변 밭 가운데는 대추나무가 자라고 그 옆에서는 팔십 촌로가 쟁기질하고 송아지가 엄마소의 젖을 빤다. 이런 한가로운 산골 마을의 풍경. 양원에서는 일상이다.
양원 다음 역은 승부.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는 한 철도원의 멋진 시 구절로 애틋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던 환상선 눈꽃 열차로 잘 알려진 오지 역이다. 35번국도 변의 석포 역에서 다리를 여러 개 건너 험한 산길로 12km나 가야 만나는 이 곳. 대추나무 드문드문 심긴 고랭지 채소밭이 산비탈을 장식한 협곡 가운데 잇다. 역은 급류의 강 건너 편 바위벽 아래.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은 그 절벽 아래에 쓰여 있다.
역과 길을 잇는 것은 출렁다리. 그러나 지난해 여름 태풍 루사 때 휩쓸려 사라진지 오래다. 이후 주민들은 지금까지 철로 위를 20분가량을 걸어 역을 오간다. 2년 전만해도 통일호 기차로 통학하는 학생은 셋이나 됐다. 그러나 상급학교에 진학하며 마을을 떠난 뒤 통학생은 볼 수 없게 됐다. 변한 것이 있다면 통일호만 서는 이 역에 무궁화 호(동대구강릉)도 정차(1분간)하기 시작한 것. 사람 만나기 힘든 산골 간이역의 역무원에게는 잘된 일이다. 석포를 나와 태백으로 거슬러 오르는 길. 낙동강 발원지인 너덜 샘이 흘러든 황지천과 철암천이 만나는 합수 점을 지난다. 구문소다. 구문소는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지형이다. 개천 물이 거대한 바위에 구멍이 뚫었기 때문이다. 구문소 터널을 지나면 태백 시내에 들어선다.
시내를 지나 두문동 재에 오르면 중턱과 마루 사이 길가에서 발원지의 석간수를 맛 볼 수 있는 너덜 샘을 만난다. 파이프를 타고 내려온 원류는 수도꼭지에서 콸콸 쏟아진다. 샘이 아니어서 기분은 덜 나지만 물맛은 그만이다. 낙동강 자동차 여행의 끝은 바로 이 상큼한 물맛에 힘입어 더더욱 진가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