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미정씨(40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추석을 앞두고 차례상 차릴 생각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태풍과 수해로 과일과 채소가격이 지난해보다 무려 1.5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차례상은 차려야겠고 돈은 넉넉지 않고.
결국 이씨는 차례음식의 종류와 양을 줄이고 할인매장을 이용해 미리 음식을 장만하기로 했다.
평소 명절 때 들이던 20만원으로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차례상에 3개씩 올리던 배 사과 감 등은 1개씩만 올리고 8명 기준에 다섯 근을 샀던 쇠고기도 당일 먹을 분량만 사기로 했다.
최대 명절인 추석을 열흘 앞두고 시민들은 즐거움이나 기대감보다는 수해로 물가가 크게 오른 데다 귀성 교통편 확보 등이 어려워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주부 이은경씨(40경기 안산시)도 값이 크게 오른 차례용품 구입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씨는 차례상에 올릴 전 가운데 산적과 돈저냐(일명 동그랑땡)만 부치고 동태전은 빼기로 했다. 쇠고기도 평소 열두 근을 샀지만 이번엔 여덟 근으로 줄이고 과일도 사과 배 귤 감 수박 등 다섯 종류를 올렸는데 올 추석 땐 감과 수박을 뺄 생각이다.
이씨는 이렇게 줄여도 다른 때보다 돈이 더 들것 같다고 말했다.
추석용 선물 구입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도 많다. 회사원 박상진씨(34서울 서대문구 홍제동)는 지난해에는 추석선물로 과일을 준비했는데 가격이 너무 올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수해지역에 큰집이 있는 가정들은 차례를 지낼 장소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심지어 장소 문제 때문에 가족끼리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주부 김모씨(35강원 강릉시 포남동)의 시댁식구들은 차례를 지낼 장소를 놓고 한바탕 논쟁을 벌였다. 그동안 차례를 지내왔던 강원 삼척시 남양동의 시부모 집이 물에 완전히 잠겨 가재도구조차 찾을 수 없게 된 것.
서로 눈치를 보던 가족들은 논쟁 끝에 추석 당일 시부모 집에 잠시 모여 스티로폼을 깔고 약식으로 차례를 올리기로 결정했다.
도시의 많은 직장인은 철도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아 귀성 교통편 확보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또 수해지역의 공단 직원들은 추석상여금조차 받지 못해 빈손으로 고향에 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서울 강남의 한 벤처기업에 다니는 원모씨(32)는 추석 때 기차로 고향인 충북 제천으로 가려했지만 표를 구하지 못해 귀성을 포기했다.
또 이번 태풍으로 공장이 완전히 침수된 강원 동해시 신한콘크리트 직원 박모씨(31여)는 공장이 침수된 마당에 상여금은 생각조차 할 수 없고 급여라도 제대로 받아 고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