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애초 의약분업을 해도 추가 재정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분업을 하면 병원과 약국을 오가야하는 불편 때문에 국민의료비지출이 줄어들 것이란 단순 예측 에 따른 진단이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자마자 1조5000억원의 돈이 더든다고 하더니 이제는 아예 올해 건강보험의 적자액이 4조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병의원과 약국에 지불하는 급여가 대폭 늘어난데다 그동안 의료계 반발을 달래기 위해 세 차례나 거듭 올린 의보수가, 본인부담금 상한선을 올린 데 따른 비용 증가 등이 겹쳐 직장 지역조합 가릴 것 없이 의보재정이 파탄지경에 몰렸다는 것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기가 막힌 소리다. 불과 7개월만에 드러날 이와 같은 최악의 결과를 이 정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더구나 의약분업으로 인한 재정의 추가부담이 3조원에 이르는 반면 항생제의 오남용 위험성은 별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해 거듭된 의료계 파업 등 엄청난 사회적 손실과 국민의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강행한 의약분업의 취지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병원을 찾는 환자수가 늘어나고 항생제를 포함한 약물의 사용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국민의 의료기관 이용과 약물 사용에 대한 오랜 관습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명분만 좇아 의약분업을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다. 물론 의약분업의 효과는 좀더 긴 시간이 지나야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의료기관의 과잉진료, 의약간 담합, 의료기관의 부당한 보험청구 등에 대한 대비와 예측마저 엉터리로 해 보험재정을 극도로 악화시킨 것은 무슨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정책 실패다.
의약분업 시작전 언론 등에서 준비부족에 따른 문제점을 제기했을 때 정부측에서는 마치 개혁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가 있었다. 개혁 을 한다는데 왜 트집을 잡느냐는 식이었다.
정부 정책 실패의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국민건강을 위하고 소득재분배를 통한 사회복지시스템으로서 기능해야 할 정부의 보건정책이 엄청난 사회 혼란에 이어 결국 국민 부담만 가중시켜서야 정부의 존재이유를 찾기 어렵다.
더 이상 그때그때 보험료만 올리는 땜질식 정책으로는 안된다. 정부는 정책실패에 대해 국민에 사과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의료보험의 기본틀부터 다시 검토해 근본적이고 안정적인 종합대책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