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엔 끝이 없습니다. 완성도 없죠. 새로운 도전과 창조, 노력만 있습니다. 저 역시 아직 끝을 보진 못했어요.”(2022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스물둘에 데뷔해 구순(九旬)에 이르기까지 70년 가까이 달려온 ‘연기 철인(鐵人)’. 대발이 아빠부터 리어왕과 영조대왕, 꽃할배 등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무대에 올랐던 이순재 배우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 대발이 아빠에서 꽃할배까지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철학과에 다니다 ‘햄릿’에 마음을 뺏겨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했다. 1957년 ‘푸른 협주곡’으로 TV 드라마를 시작했고, 1964년 동양방송(TBC) 공채 1기로 뽑혔다. 영화는 1966년 ‘초연’으로 데뷔했다.
고인은 일생 화려한 스타는 아니었다. 하나 장작불처럼 꾸준했다. ‘TV만 틀면 이순재’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한 달에 작품 30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1992년 국회의원(서울 중랑갑) 당선 전후 정치에 몸담았을 때조차 연기를 놓지 않았다.
이즈음 찍었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그의 연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역대 드라마 시청률 2위(65%)를 기록하고,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작품 속 ‘대발이 아버지’는 오랫동안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고인은 ‘목욕탕집 남자들’ ‘동의보감’ ‘이산’ 등 주연급으로만 140여 편에 출연했으며, 단역을 합치면 400여 편에서 연기했다. 중장년들에겐 허준의 스승(‘동의보감’)과 영조(‘이산’) 등 사극 연기가 주로 기억에 남았지만, 70대에 들어 도전한 시트콤으로 젊은 층에서도 각광 받았다. ‘거침없이 하이킥’(2006년) 등에서 보여준 코믹 연기로 ‘야동순재’란 애칭도 얻었다. 이후 배우 신구와 박근형, 백일섭 등과 출연한 tvN 예능 ‘꽃보다 할배’(2013년) 등으로 또 한번 사랑받았다.
● “여러분, 평생 신세 많이 졌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의 마음은 ‘고향’ 연극으로 향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못 해본 게 천추의 한”이라던 그는 결국 2021년 87세 ‘리어왕’으로 무대로 올랐다. 고인은 2023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연극엔 우리 사회를 바꿀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2022년 연극 ‘갈매기’를 연출하며 자칭 ‘최고령 신인 연출가’도 됐다.
“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꿈”이라던 고인은 실제로 연극에 출연하다가 건강이 악화됐다.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무대에 오르다가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데뷔 70주년을 맞아 준비했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고인은 1971년 연기자협회 초대 회장으로 배우 권익 지키기에 나섰으며, 세종대와 가천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2002년 보관문화훈장, 2018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난히 상복이 없던 고인은 지난해 12월 31일 ‘2024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생애 처음 연기대상을 받은 그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시상대에 오른 그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날도 있네요.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하고 늘 준비하고 있었어요. 시청자 여러분,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李 대통령 “고인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25일 고인의 별세 소식에 각계에서 애도가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선생님이 남긴 작품과 메시지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추모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꽃보다 멋진 할배, 학생들을 사랑했던 교수, 존경받는 선배, 영원한 예술가”라고 했다.
배우 정보석은 “선생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우리 방송 연기의 시작이자 역사”라고 했으며, 배우 김혜수는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며 고개 숙였다. ‘꽃보다 할배’를 연출했던 나영석 PD도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셨다”고 추모했다. 이날 오후 2시경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는 배우 최불암 나문희 하정우 안재욱 등이 보낸 조화들로 가득 찼다.
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