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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차별이 더 무섭다’는 외국인들

Posted May. 31, 2025 07:00   

Updated May. 31, 2025 07:00


“그 식당, 외국인들이 많이 가잖아요. 최대한 피하는 게 좋습니다. 그들이 자주 보이는 상점도 마찬가지에요.”

경기 시흥 정왕동에 사는 한 주민의 이야기다. 경기 안산 원곡동, 수원 고등동 등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 때문이다. 중국 국적의 차철남은 17일 정왕동에서 2명을 망치로 때려 숨지게 했다. 자신의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틀 뒤엔 ‘나를 무시한다’며 자택 인근 편의점주 등 2명을 흉기로 찔렀다. 19일 동탄호수공원에선 40대 외국인이 흉기 3개를 들고 주변에 있던 한국인 5명을 공격했다. 화성 병점동 길거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외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에선 “밤에 돌아다니다 외국인 만나면 깜짝 놀란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은 더 적나라하다. ‘중국XX는 다 범죄자, 잡아들여라’고 하거나 피부색을 언급하면 ‘검은 X들은 피해야 한다’는 등 혐오의 글이 게재되고 수많은 ‘좋아요’가 달린다. 물론 최철남 등의 범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외국인 관련 범죄가 발생할때마다 전체 외국인을 향한 혐오와 배척이 반복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외국인 범죄 건수 자체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국내 외국인 범죄자 수는 2021년 2만9450명에서 지난해 3만2737명으로 4년 새 11% 증가했다. 다만 이 기간에 국내 체류 전체 외국인 수도 195만명에서 265만명으로 36% 늘었다. 절대 수 자체가 커진 것이다. 범죄율로 보면, 지난해 10만명 당 외국인 범죄자는 1384명이었다. 내국인 범죄자는 10만 명 당 2000명에 육박했다. 밤 늦게 골목길에서 외국인과 한국인을 마주쳤을 때 외국인이라도 더 위험한 건 아닐 수 있다.

낙인찍고 회피하기엔 우리 주변엔 이미 외국인이 너무 많다. 국내 체류 외국인 265만 명이란 수는 국내 전체 인구 5121만7211명의 5.17%에 해당한다. 100명 중 5명 이상이 외국인인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외국인 등의 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도심의 상점 식당 등에서 근무하는 외국인을 매일 만난다. 건설현장, 공장, 요양시설은 외국인 없이는 아예 운영이 안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국내 초중고 다문화 학생은 전체의 5%에 달한다. 충북 청주시 봉명초교는 학부모들에게 보내는 안내장을 베트남어 등 5개 언어로 배포한다. 광주 광산구 하남중앙초교 홈페이지엔 러시아어, 몽골어, 태국어 등 8개 언어로 번역돼있다.

이미 그들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우리’임에도 혐오와 차별 속에서 국내 외국인 중 적지 않은 수기 혐한(嫌韓)이 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현장에서 임금체불 등 부당한 대우와 인종차별 문제을 겪은 외국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은 대학이 주요 ‘혐한’ 제조소가 됐다고 한다. 한 외국인 유학생은 “K팝, K드라마을 통해 한국을 좋아하게 됐고 유학도 왔다”며 “막상 와보니 형식적인 수업에 부실한 학사관리와 무관심까지, 우리를 ‘등록금 인출기’로만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 만 26만 명으로, 4년제 및 전문대 학생의 10%나 된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학령인구가 줄자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 유치로 돌파구를 찾았다. 하지만 유학생을 데려오는 데엔 적극적이지만 막상 오면 관리를 안한다는 것이다. 한 대학 총장은 “한국에 유학 올 정도면 한국을 좋아하는 지한파들”이라며 “한국에서 좋은 인연과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 지한파가 돼야 할 유학생들이 오히려 혐한파가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학교 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상에서도 한국에 나쁜 감정을 가질 계기가 너무 많다는 게 외국인 유학생들의 하소연이다. 특히 백인이 아닌 중국, 베트남,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계는 대중교통에서 옆자리를 피하거나 원룸 등 부동산 계약도 거절 당하기 일쑤라고 한다. 통계청 조사 결과 외국인 중 20%는 인종차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상처를 받고 자국으로 돌아간 외국인들은 유튜브 등에 자신이 겪은 경험을 ‘K차별’이라고 부르며 혐한 콘텐츠를 생산하기도 한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곧 3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외국인 관련 범죄도 늘어날 수 있는 만큼 대책을 세워야 하고 엄정한 처벌도 필요하다. 불법체류, 외국인 범죄예방책 등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며 혐오와 차별이 강화되는 사회는 외국인 범죄보다 더 위험해보인다. 불안하단 이유로 벽을 세우기 보단 상식 속에서 우리의 이웃으로 다름을 조율하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