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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스타일’에 빠진 국제영화제

Posted March. 03, 2020 07:52   

Updated March. 03, 202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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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감독.’

 제7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도망친 여자’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한 홍상수 감독(60)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가다. 홍 감독은 남녀의 일상적인 만남과 대화를 통해 인간의 내밀한 욕망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을 선보여 왔다. 1996년 장편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24번째 장편 ‘도망친 여자’까지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인물의 심리 묘사에 집중하며 ‘홍상수 영화’만의 색깔을 구축해 왔다. 

 홍 감독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일상성이다. 평범한 남녀가 직장 혹은 여행지에서 만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술을 마시는 소소한 일상에서의 대화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묘사한다. 남녀 주인공이 술을 마시며 ‘밑도 끝도 없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홍 감독 영화의 일상에 꼭 등장한다. 술자리에서 사소한 것들이 토론의 주제가 되고 정작 등장인물이 말하려는 핵심은 빠진다. 진심은 묻히는 소통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캐릭터지만 각 인물들 간의 미묘한 역학관계를 통해 내면적 갈등, 모순, 위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재미를 더한다”며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 홍 감독의 영화에서도 드러난다”고 말했다.

 홍 감독의 작품세계는 연인인 배우 김민희가 ‘페르소나’로 공고히 자리 잡으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과거 홍 감독의 영화는 속내를 명쾌히 밝히지 않는 여성 인물에 대한 남자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다뤘고, 그 과정에서 남자 주인공의 ‘찌질함’을 자조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짙었다. 안숭범 영화평론가는 “기존 홍 감독 영화에서 여성 인물은 남성의 미시적 욕망의 대상이었다면 2010년 ‘옥희의 영화’부터 여성의 욕망을 들여다보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년)에서는 김민희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사회의 기준에 벗어나는 삶에 대한 고민도 표출했다”고 말했다. 김민희에게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는 유부남과의 만남에 따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외로 떠나온 영희(김민희)의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각본의 특징은 촬영 기법에서도 드러난다. 홍 감독은 별다른 기교 없이 풀샷, 줌인 같은 기본적인 기법을 선호한다. 안 평론가는 “장면을 끊지 않고 보여주는 ‘롱 테이크’ 기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화면에서 피사체가 사라져도 몇 초간 그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을 기교 없이 그대로 담아낸다. 이를 통해 인물이 하는 말과 행동, 대사 안에 숨은 비루한 욕망에 오롯이 집중하게 한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국제영화제에 꾸준히 영화를 출품하며 ‘영화제가 사랑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서구 사회에 자리 잡은 모더니즘의 특징은 일상의 미학이다. 홍상수의 영화가 프랑스, 베를린 등에서 각광받는 이유도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라며 “사회적 메시지나 시대성을 담지 않고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천착한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