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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숫자의 힘

Posted August. 03, 2019 07:28   

Updated August. 03, 201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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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란 매체의 경쟁력은 시청률에서 나온다. 매일매일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실전을 치르면 ‘잘하는 놈’만 살아남고 실력 본위의 조직 문화가 만들어진다.일반인들은 가구시청률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방송국에서는 구매력 있는 인구가 대상인 타깃시청률은 물론이고 도달률(시청자 유입률)과 평균시청시간비율(시청자가 프로그램 분량의 몇 %를 보았는지를 나타냄) 등의 세부 항목을 통해 시청자들의 움직임과 선호도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최근 정보기술(IT) 발전이 방송과 결합하면서 시청 행태 측정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상징적인 변화는 유튜브에 있는 ‘좋아요’ 버튼이다. 이 버튼과 댓글은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직접적인 연결고리, 즉 대화 채널이다. 예전에는 만나기 어려웠던 창작자와 시청자가 바로 만나 소통하게 된 것이다.

 좀 더 고차원적이면서 ‘파괴적인’ 힘을 가진 변화는 빅데이터의 사용이다. 디지털 기술은 채널 이동, 장면 건너뛰기와 같은 시청자 행태와 그 이유를 담은 대규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게 해 준다. 결과적으로 비용과 시간 문제 때문에 전수조사가 아닌 샘플링을 이용해야만 하는 기존 시청률 조사 방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빅데이터 기술의 특징을 ‘4가지 V’로 압축해 말한다. 대용량(Volume)과 빠른 속도(Velocity), 데이터의 다양성(Variety), 새로운 가치(Value)가 그것이다.

 빅데이터의 활용은 이미 넷플릭스와 아마존, 유튜브 등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에 의해 현실화돼 있다.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넷플릭스는 세계 최초로 빅데이터를 이용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만들었다. 시청자가 어떤 배우와 장르를 좋아하는지, 무엇을 다시 돌려 보는지, 어떤 장면에서 감상을 중단하는지 등을 분석했다. 이어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 ‘데어데블(Daredevil)’ 같은 드라마를 같은 방식으로 내놓고 있다.

 넷플릭스는 홈페이지 디자인, 선택 버튼 모양 등 방송과 관련된 모든 것을 A와 B 2개 세트로 만들어 놓고 실적을 비교해 결정을 내리는 ‘A/B 테스팅’이란 방식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이전보다 프로그램 시청률을 20∼30%나 올렸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들은 조만간 방송국과 프로그램 제작사 등 기존 사업자들에 의해서도 채택될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주문형 비디오(VOD) 등의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데이터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혁신은 결국 프로그램 수준의 평균 향상이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방송을 비롯한 예술은 기계적인 숫자보다는 인간의 감성과 천재성에서 나온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는 방송을 비롯한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자아(自我·나)와 타아(他我·너)의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의사소통이란 나의 뜻을 너에게 전하는 과정이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나와 너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아울러 남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안다면 더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과 고품질의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또 방송은 기본적으로 대중예술이다. 대중의 감성을 이해하고 함께 호흡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은 ‘눈치 보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시청자의 속마음을 읽고 세상의 변화를 놓치지 않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도 사실 ‘디지털화된 눈치 보기’ 아닌가. ‘눈치 보기’가 없었다면 방송이란 장르가 이렇게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무경기자 y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