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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January. 05, 2019 07:31   

Updated January. 05, 201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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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의 시기에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주했다. 이주 전까지 보고 겪었던 현대 문명에 대해 니어링은 “슬프고 야만스러운 방식”이라고 표현했다.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변화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변화 속도란 어떤가. 지나치게 빠르다던 1930년대의 변화와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지금 우리는 질주하는 변화 앞에 맨몸으로 서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모를 변화 앞에서 우리는 좌절한다. 심장이 부서지도록 뛰어야만 이 대오에서 낙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긴장과 불안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는 더 좋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세상이란 포기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희망하는 우리가 항상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 마음이 불안의 풍문에 지쳐버린다면 우리는 잠시 시를 읽으며 쉬어갈 수도 있다.

 꽃 곁에 있으면 향기가 묻고, 햇살 곁에 있으면 온기가 전해지기 마련이다. 맑고 고운 시를 읽다 보면 마음에 새살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든 나아간다. 여기 나태주의 ‘시’ 역시 좋은 차오름을 가능하게 해준다.

 나는 이 시인을 아주 잘 알고 있는데, 내가 알기로 이 시인의 소원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세상이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것. 이 간단하고도 큰 소원이 모든 사람에게서 이루어지기를 새해의 마음으로 빌어 본다. 문학평론가


박은선기자 sunney7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