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자불라니 잡으려면

Posted January. 11, 2010 08:16   

中文

#장면1. 상대 진영으로부터 긴 패스가 날아왔다. 가슴으로 공을 트래핑하려던 수비수 강민수(수원)는 공이 예상보다 뻗어 나가자 엉겁결에 머리를 갖다 댔다. 머리에 빗맞은 공은 힘없이 흘렀다. 상대 공격수는 그 공을 잡아 위협적인 슛을 날렸다.

#장면2. 미드필더 김재성(포항)이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뒤 길게 크로스를 올렸다. 상대 골문 근처에는 노병준(포항)과 이동국(전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공은 휘지 않고 밋밋하게 날아가 상대 골문을 훌쩍 벗어났다.

#장면3. 상대 공격수가 아크 정면에서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슛을 날렸다. 골키퍼 이운재(수원)가 몸을 날렸지만 이미 늦었다. 공은 빨랫줄처럼 쭉쭉 뻗어 골네트를 갈랐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9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란드스타디움에서 열린 잠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또 다른 적과 싸우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낯설기만 한 월드컵 공인구 자불라니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은 것이다.

경기에 앞서 허정무 감독은 고지대와 잔디 등 경기 외적인 요인 때문에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 선수들은 예상대로 경기 초반부터 낯선 환경 속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끝에 2-4로 졌다. 해발 1750m의 고지대에서 몸은 한없이 무거웠다. 물기가 많은 잔디 위에서 빙판 위의 아이스하키 선수들처럼 자주 미끄러졌다.

특히 자불라니에 대한 적응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자불라니는 줄루어(남아공의 공용어 가운데 하나)로 축하하다라는 뜻이지만 이날 한국 선수들은 전혀 축하받지 못했다. 탄성이 좋은 자불라니는 선수들의 예상 범위를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그라운드 위를 날아 다녔다. 꿰맨 자국 없이 8개 조각을 붙여 거의 원형으로 제작된 자불라니는 회전이 별로 없어 심하게 흔들렸다. 수비수 조용형(제주)은 도저히 공의 낙하지점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공의 움직임이 심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미드필더 김정우(광주)도 탄력이 좋아 공 컨트롤은 물론 패스의 강도 조절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잠비아 선수들은 마구 같은 자불라니를 비교적 잘 다뤘다. 박태하 코치는 며칠 전 잠비아가 나이지리아와 자불라니로 이미 실전 경기를 치렀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강력한 압박이 이뤄지는 실전을 치르면 아무래도 공에 대한 적응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다는 얘기다.

아프리카 선수 특유의 유연함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수비수 최철순(전북)은 잠비아 선수들과 직접 부딪쳐 보니 몸이 고무공같이 유연했다며 그렇다 보니 달라진 환경에 대한 적응력도 우리보다 확실히 한 수 위로 보였다고 말했다.

월드컵 개막까지는 이제 5개월가량 남았다. 어떻게 해야 자불라니를 지배할 수 있을까. KBS 한준희 해설위원은 수비수의 경우 긴 패스의 낙하지점을 정확히 포착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공을 안정적으로 간수하는 연습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공격수에게는 낮고 빠른 크로스가 효과적이다. 또 감아 차는 킥보다 빠르고 정확한 킥을 연습해야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